SK, 故 최종현 회장 13만건 기록 디지털화... '선경실록' 공개 준비
SK그룹이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 활동 전반을 담은 13만여 건의 기록을 디지털로 복원했다. 그룹은 이 방대한 자료를 '선경실록'이라 명명하고, 향후 내부 교육과 경영철학 전파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2일 밝혔다.
자료는 그룹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문서와 사진, 육성 녹음 테이프 등을 포함해 총 13만1647건에 이른다. SK 관계자는 "녹음 테이프만 3530개에 달한다. 하루 8시간씩 듣는다 해도 1년이 넘게 걸릴 분량"이라고 전했다.
왼쪽이 故 최종현 선대회장 / 사진=SK
복원된 육성 자료에는 최 선대회장이 임직원들과 나눈 회의와 간담회는 물론, 그룹 총수 간 담소, 정책 판단 과정까지 담겨 있다. 당시 기업가로서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했는지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정치 불안에도 흔들림 없던 기업가의 신념
1980년대 중반,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던 시기. 최 회장은 신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정치 불안으로 경제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기업가다. 정치가 불안하다고 기업까지 흔들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치가 불안할수록 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관행에 대한 통찰도 눈에 띈다. 1982년 신입사원과의 대화에서는 "미국도 인재라면 외국인을 쓴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좁은 땅에서 지연, 학연, 파벌을 따지는 건 낭비다"며 관계 중심 문화를 비판했다.
"기술만으로는 부족...시장도 알아야 진짜 실력"
기술과 시장에 대한 통찰도 당시로선 선구적이다. 1992년 임원 간담회에서 그는 "R&D에서 성과를 냈는데도 수익이 없다고 예산을 줄이면 안 된다. 연구 인력도 시장을 알아야 진짜 실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사진=SK
같은 해 SKC 회의에서는 "플로피디스크 하나는 1달러지만, 소프트웨어를 얹으면 20배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외교부터 김장김치까지...기록이 된 기업사(史)
이외에도 선경의 성장 과정이 담긴 생생한 기록들도 복원됐다.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정부 요청으로 최 회장이 중동 고위 인사를 만나 석유 공급을 논의한 과정, 1992년 이동통신사업권을 자진 반납한 후 임직원을 격려한 일화 등이 대표적이다.
총수 간 산업 시찰 중 나눈 대화, 외국 담배회사의 유통 제안을 '기업 문화에 맞지 않는다'며 단칼에 거절한 장면, 김장김치 보관법까지 그의 기록은 '경영자 최종현' 그 이상을 보여준다.
사진=SK
SK는 이번 디지털 복원 자료를 그룹의 경영 철학인 SKMS와 '수펙스(SUPEX·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 문화를 확산하는 데 활용할 방침이다. SK 관계자는 "우선 내부 교육과 활용에 집중하고, 외부 공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