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상장기업들이 이사 수를 줄이거나 임기를 편법 조정해 집중투표제를 피하는 행위가 엄격히 제한된다. 유상증자나 중복상장을 추진할 때도 주주 보호 조치 내역을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5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상장사의 지배구조 현황과 주주권익 보호 정책을 투자자에게 알리는 공시 수단이다. 올해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공시 의무가 확대된 데 이어, 이번 개정을 통해 공시 항목이 한층 세분화됐다. 개정안은 내년 제출하는 보고서부터 적용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집중투표제 우회 방지 장치다. 2025년 9월 상법 개정에 따라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사가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집중투표제 실시가 의무화됐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가 특정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주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다.
그러나 일부 기업이 이사 수를 축소하거나 임기를 다르게 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개정안은 이사 수나 임기에 변경이 생길 경우 그 사유와 집중투표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서에 반드시 기재하도록 했다. 형식적 변경을 통한 편법 우회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유상증자와 중복상장에 대한 정보 공개도 대폭 강화된다. 기업이 유상증자를 진행했거나 계획 중이라면 제3자 배정 여부, 증자 규모, 할인율, 자금 사용 목적, 지배주주의 신주 취득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아울러 중복상장이나 유상증자 추진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포함한 기존 주주와 어떻게 소통했는지, 주주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도 필수 공시 대상에 포함됐다.
주주총회 관련 정보의 제공 시기도 앞당겨진다. 그동안 상당수 기업이 주주총회 1주일 전에야 사업보고서를 공개해 주주들이 충분히 검토하고 의결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개정안은 사업보고서 제출 일자를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기재하도록 해 최소 주주총회 2주 전까지 사업보고서가 제공되도록 유도하며, 2주 전까지 제출하지 못할 경우 그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배당 정보 공개 시기 역시 구체화된다. 상법상 주주가 배당정책 개선을 요구하려면 주주총회 6주 전까지 주주제안을 해야 하지만, 배당금액 등 핵심 정보가 주총 직전에 공개돼 주주제안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앞으로는 결산배당 여부와 배당금액을 주주총회 6주 전에 공시했는지 여부를 보고서에 명확히 밝혀야 한다.
자사주 관련 정보도 확대된다. 기존에는 당해 연도 자사주 취득·소각·보유 현황만 공개했으나, 개정 후에는 최근 3년간의 추이를 함께 기재해야 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는 기업의 주주환원 정책 변화를 한눈에 파악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 관련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와 투자자가 의사결정 및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와 한국거래소는 이달부터 상장법인 공시 담당자를 대상으로 일대일 컨설팅과 교육, 설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개정은 기업의 자율성보다 주주 보호에 무게를 실은 조치로 평가받는다. 기업의 공시 부담은 늘어나는 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더 조기에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실질적인 주주 중심 경영이 강화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