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한동훈 무소속 의원 딸의 허위 스펙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는 반면,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은 사건 배당 이후 보름 넘게 이첩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장고에 들어갔다. 출범 한 달을 맞은 중수청이 출범을 상징할 '1호 사건'을 확정하지 못하면서 유력 정치인 관련 대형 사건 수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지방중수청 반부패수사국은 형법상 제3자 뇌물, 증거인멸 교사,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된 한 의원 부부 사건을 지난 16일 배당받아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다. 중수청은 아직 경찰에 이첩을 요구하거나 사건을 넘길지 방향을 잡지 못했고 고발인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반면 경찰은 같은 날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이관 접수한 뒤 19일 배당을 마치고 27일부터 나흘 연속 고발인 조사를 진행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27일 간담회에서 "경찰 수사가 중단될 수도 있지만 마무리해야 할 가능성도 높다. 이첩하더라도 수사기관의 자존심이 있다"며 중수청의 요구가 있기 전까지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냈다.
중수청의 이러한 신중한 행보 배경에는 정무적 부담과 혐의 입증 역량에 대한 고심이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중대범죄 수사 실적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유력 정치인 관련 사건을 첫 공식 수사로 개시할 경우 출범 초기부터 '표적 수사'나 '정치적 중수청'이라는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1호 사건에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겪게 될 타격도 주요 고려 요소다.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변호사는 "김지용 중수청장이 한 의원 사건 진상규명에 의지를 드러냈지만, 중수청에서 하는 유의미한 수사 1호가 야당 당대표를 지냈던 중량급 대선 후보 잠룡을 조사하는 게 되는 건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짚었다. 김상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한 의원 사건은 혐의가 입증이 될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보고 수사할 것"이라며 "주요 인사에 대한 수사는 혐의 입증 부담이 생기는데, 이도 저도 안 되고 발을 빼지도 못하는 것보단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사 권한 보유에도 진퇴양난
중수청은 출범 이후 추미애 경기도지사와 임은정 광주중수청장 관련 사건을 경찰로 넘겼다. 다만 두 사건은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 관할 밖이었던 반면, 한 의원의 제3자 뇌물 혐의는 중수청의 법적 수사 대상에 해당한다. 국정감사에서 김지용 중수청장이 진상규명 필요성을 언급했던 만큼 타 기관 이첩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성일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의원 사건을 경찰 등에 넘기지 않고 갖고 있다는 것은 정치적 부담도 감수하면서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상현 교수도 "중수청이 1호 사건을 뭘로 할지에 대해 나름의 압박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정치적인 고려를 안 할 순 없다. 다만 행정부 소속인 수사기관의 속성상 현 여권보다는 야권 인사에 대해 수사하는 데 부담이 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력난과 역량 검증 과제
중수청의 대형 수사 착수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는 내부 역량과 수사 인프라 한계도 꼽힌다. 현재까지 중수청이 피의자 신병을 확보하거나 송치한 사건은 대부분 마약 및 보이스피싱 사건에 머물렀다. 지방중수청 상당수는 수사팀을 이끌 과장급 간부 자리조차 채우지 못했다.
실제 지난달 경찰이 통보한 금융권 해킹 사건에 대해서도 중수청은 수사 불개시를 결정했다. 경찰 수사 진척도를 이유로 들었으나 조직 내 대형 사건 처리 기반이 온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성일 교수는 "실적을 내기 위한 중대한 수사는 최소 3개월 이상을 수사에 투입해야 하는데 지금 형편으로는 힘들어보인다"며 "금융권 해킹 사건은 중대범죄로서 의미가 있는데 결국 수사를 안 맡지 않았나. 상당한 인적·물적 인프라가 투입돼야 하고 기소까지 되는 게 만만치 않을 거라 봤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혐의 입증이 명확하고 상징성을 갖춘 독자적 사건을 발굴하기 전까지 중수청의 대형 수사 개시는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