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시장에서 최고가 대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공사비 급등으로 인한 분담금 부담과 대출 규제 강화가 매수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11차 전용면적 183㎡가 이달 8일 93억원에 매매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최고가인 128억원에 비해 35억원(27.3%) 떨어진 가격이다. 지난 8월 거래가 97억3000만원과 비교해도 4억3000만원 하락했다.
같은 압구정2구역의 신현대12차 전용 182㎡는 지난 14일 88억원에 거래됐다. 올해 7월 최고가 112억5000만원보다 24억5000만원 낮은 금액이다.
지난 21일 같은 면적이 92억원에 팔리며 일부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최고가와 20억원 이상 차이가 난다. 현대2차, 현대8차, 한양3차 등 압구정 재건축 단지 전반에서 최고가를 하회하는 거래가 계속됐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전용 107㎡는 지난달 14일 46억2000만원에 매매됐다. 지난해 10월 최고가 61억5000만원과 비교하면 15억3000만원 낮은 수준이다. 최고가 거래는 12층, 이번 거래는 2층이라는 층수 차이가 있지만 같은 2층에서 이뤄진 올해 1월 거래가 57억2000만원보다도 11억원 떨어진 가격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전용 82㎡는 지난 10일 40억6500만원에 팔렸다. 지난 8월 거래가 45억7500만원에 비해 5억1000만원, 지난해 12월 최고가 46억2500만원보다 5억6000만원 하락했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6단지 전용 60㎡는 지난 1일 30억2000만원에 거래돼 9월 22일 거래가 32억원보다 1억8000만원 내렸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도 이달 3일 34억원, 6일 34억3000만원에 매매됐다. 지난달 21일 거래가 36억원에 비해 1억7000만~2억원 낮은 금액이다.
통계에서도 하락세가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22일 발표한 10월 셋째 주(19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강남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31%, 서초구는 0.32%, 송파구는 0.13% 각각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값은 0.13% 상승해 강남3구와 대조를 보였다.
강남구와 서초구는 지난 8월 둘째 주부터 11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8월 서울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지수는 전월 대비 0.29% 하락해 서울 5개 권역 중 유일한 하락세를 기록했다.
재건축 사업비 상승이 가격 조정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건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오르면서 공사비가 증가하자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 부담도 커졌다.
올해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마치고 관리처분계획 수립을 진행 중인 은마아파트는 최근 조합원 추정 분담금을 상향 조정했다.
전용 84㎡ 소유자가 재건축 후 같은 면적을 분양받으려면 약 4억3000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지난해 9월 추정치 1억8000만원에 비해 2억5000만원 늘어난 금액이다.
전용 76㎡ 소유자가 84㎡를 선택할 경우 약 7억4400만원, 109㎡로 확대하면 약 16억2300만원의 추가 분담금이 발생한다. 조합이 예상 공사비를 3.3㎡당 950만원으로 상향 반영하면서 분담금이 1년 새 급증했다.
공사비 부담 문제는 개별 단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2년부터 올해 9월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정비사업 공사비 분쟁은 총 75건이다. 이 중 공사비 증액에 합의한 60개 구역의 평균 인상률은 기존 계약 대비 38.2%에 달했다.
올해 8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8.7로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했다. 관리처분계획 수립 단계에서 조합원 분양가와 분담금이 확정되지만, 공사비 재협상이나 설계 변경, 사업 지연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로 부담액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강화된 대출 규제도 매수 여력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지난해 10·15 부동산 대책을 통해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주택가격별로 차등 적용했다. 시가 15억원 이하 주택은 최대 6억원,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 주택은 4억원, 25억원 초과 주택은 2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고가 재건축 아파트 매입에는 상당한 자기자본이 필요한 구조다. 다만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에는 주택가격별 차등 한도를 적용하지 않고 기존 6억원 한도를 유지한다.
금리 부담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뒤 이달 2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 3.00%로 동결했다. 이주비와 사업비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이 재건축 사업의 변수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도 고가주택 보유자의 매도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개편안은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액을 거주 1주택자 14억원, 비거주 1주택자 9억원으로 차등 적용하고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거주 기간 중심으로 개편하는 내용을 담았다. 제도 시행 후에는 장기 보유보다 실제 거주 여부에 따라 세 부담이 달라질 전망이다.
서울시가 용적률 완화 등으로 정비사업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공사비와 금융비용 상승으로 늘어난 사업비를 일반분양 수익만으로 충당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재건축을 통한 자산가치 상승 기대가 유지되더라도 매입가격에 분담금과 금융비용을 더한 총투자금이 커지면 투자 부담도 증가한다.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점도 조합원 분담금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 원자재 가격이 공사비 상승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금리, 인건비, 안전·노동 관련 비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