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해외에 판매한 K9 자주포의 부품 공급과 정비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자주포를 납품한 뒤에도 운용하는 동안 꾸준히 발생하는 유지보수 수요를 장기적인 거래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구매국 입장에서도 부품과 정비 지원은 중요하다. 성능이 뛰어난 무기라도 고장 난 부품을 제때 교체하지 못하면 필요한 순간 사용할 수 없다. 판매 이후 장비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도록 지원하는 능력이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26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공개자료 등을 종합하면 회사는 K9 운용국을 대상으로 부품 주문 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유럽 내 부품 공급과 정비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운용 데이터를 분석해 필요한 부품과 정비 시점을 미리 예측하는 체계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부품 주문은 온라인으로... 유럽 현지 공급망도 구축
지난 9월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제5회 'K9 유저클럽'에서는 이 같은 사업 방향을 보여주는 디지털 군수지원 시스템 'TOMMS Sustainment Portal(TSP)'이 공개됐다.
TSP는 필요한 부품을 확인하고 견적을 요청한 뒤 발주하는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기존에 이메일과 수작업으로 처리하던 업무를 온라인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요가 많은 부품 약 700~800종을 디지털 목록으로 제공하며, 운용국은 부품 조회부터 견적 요청, 발주, 배송정보 확인까지 처리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앞으로 폴란드에 구축할 부품창고와 TSP를 연계할 계획이다. 유럽에서 운용하는 K9에 부품이 필요할 때 한국에서 매번 배송하는 대신 현지 재고를 활용해 공급 시간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폴란드 현지 업체와의 정비 협력도 추진해 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폴란드 방산업체 HSW가 2024년 5월 체결한 협력의향서에는 K9 수리 기술 이전과 관련한 협력 확대 내용이 포함됐다.
부품이 필요해진 뒤 주문하는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요를 미리 파악하는 기술도 추진하고 있다. 장비 운용 기록과 정비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부품이 언제 필요할지 예측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체계가 구축되면 운용국은 필요한 부품을 사전에 확보하고 정비 일정을 준비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수요에 맞춰 재고와 공급 계획을 세울 수 있어, 부품 부족으로 장비를 가동하지 못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한화는 지난 9월 폴란드 국제방산전시회 'MSPO 2026' 참가 발표에서도 예측 정비용 장비 상태·사용 모니터링 시스템 'HUMS'와 K9 포탑 시뮬레이터를 전시 품목으로 제시했다. 장비 판매 이후의 정비와 교육까지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TSP가 부품을 주문하고 공급받는 과정을 개선한다면, HUMS는 장비 상태를 살펴 정비가 필요한 때를 판단하도록 돕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처럼 장비 공급 이후의 운용 과정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고 있다.
현지 생산에서 정비까지…납품 이후에도 이어지는 사업
유럽 내 생산시설에도 정비 기능을 함께 마련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루마니아 듬보비차주 페트레슈티에서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를 생산할 'H-ACE 유럽'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이 시설은 조립과 통합, 시험뿐 아니라 장비 운용 기간에 걸친 유지보수 지원도 수행하도록 계획됐다.
앞서 회사는 2024년 루마니아와 K9 자주포 54문, K10 탄약운반장갑차 36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공장이 완공되면 현지에서 장비를 생산하고 이후 유지보수까지 지원할 기반이 마련된다.
현지 정비시설은 자국에서 장비를 직접 관리하려는 구매국의 요구에도 부합한다. 해외에서 부품이나 정비 인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부담을 줄이고, 현지 기업과 협력해 장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출한 K9의 정비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모두 맡는 구조는 아니다. 구매국마다 자체 정비 역량과 계약 조건이 달라 회사가 참여할 수 있는 범위에도 차이가 있다.
핀란드가 대표적이다. 핀란드는 지난 4월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군이 운용하던 K9 자주포 112문을 추가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예비부품과 정비용 특수 공구, 시험 장비도 포함됐다.
핀란드는 기존 도입 과정에서 자국 내 정비·유지관리 능력을 이미 구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추가 도입이 곧바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정비 매출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장비를 들여올 때 부품과 정비 장비 확보도 함께 이뤄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매국이 자체 정비 역량을 갖추더라도 부품과 기술 지원 수요는 남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지 업체와 역할을 나누고 필요한 부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사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 현지 생산·정비 거점과 부품 공급망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기반이다.
K9을 운용하는 국가가 늘수록 납품 이후의 부품 공급과 정비 지원도 중요해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추진 중인 현지 공급망과 정비 체계를 안착시킨다면, 기존 고객과의 장기 거래를 확보하고 신규 수출에서도 운용 지원 능력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