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단속 과정에서 경찰이 운전자에게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측정 결과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1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화물차 운전자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3년 12월 세종시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화물차를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경찰은 도로 한가운데 시동이 켜진 차량에서 운전자가 잠들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서 A씨를 발견한 경찰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인근 지구대로 데려갔다.
이후 실시한 음주 측정에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기준인 0.08%를 넘는 0.081%로 나타났다.
A씨는 2019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불거졌다. 경찰이 음주 측정에 앞서 A씨에게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A씨는 입안에 남아 있던 알코올 때문에 실제보다 높은 수치가 측정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측정 결과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호흡 방식으로 음주 측정을 할 때 경찰이 운전자에게 입안의 잔류 알코올을 헹궈낼 수 있도록 마시는 물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입안에 남아 있는 알코올이 호흡 측정 결과에 영향을 미쳐 혈중알코올농도가 실제보다 높게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물을 제공하도록 한 규정이 경찰 내부 업무 지침에 따른 절차일 뿐,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음주 측정이 위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술을 마친 뒤 20분 이상 지나 측정한 만큼 입을 헹구지 않았더라도 결과의 정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2심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음주 측정을 거부하다가 갑자기 일어나 측정기를 물고 숨을 불어넣는 바람에 경찰이 물을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A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입을 헹굴 물을 제공하는 절차가 2023년 7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명시돼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찰 내부 지침을 넘어 법령에 규정된 절차인 만큼 이를 지키지 않고 수집한 음주 측정 결과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입 헹굼 물 제공 절차는 형사 절차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이 절차를 따르지 않은 음주 측정 결과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배제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술을 마신 뒤 20분이 지났다는 사실만으로 입안에 남은 알코올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트림이나 딸꾹질, 구토 등으로 입안에 알코올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물을 제공하지 못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측정 결과를 예외적으로 증거로 인정할 만한 사유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A씨의 음주 측정 결과를 증거로 사용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A씨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사건을 돌려받은 대전지법이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다시 재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