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는 온혈동물이었다는 과학적 증거가 나왔다.
17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엔젤레스(UCLA) 주도의 국제 연구진은 티라노사우루스의 평균 체온이 36.3도였다는 분석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미국 서부 헬크릭 지층에서 발굴된 백악기 후기 티라노사우루스 이빨 세 개의 법랑질에 포함된 동위원소 덩어리를 분석해 체온 범위를 산출했다.
세 개 이빨에서 측정된 체온은 평균 36.3±2.5도로, 코끼리의 체온(36도 안팎)과 유사했다. 대형 조류인 타조(38.1~39.7도)나 에뮤(37.7~38.3도)보다는 다소 낮지만 현존하는 내온성 동물의 체온 수준을 보인 것이다.
같은 시대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악어 화석의 체온은 30.9±2.6도로 나타났다. 티라노사우루스가 같은 환경의 파충류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체온을 유지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체온 조절 메커니즘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당시 북미 지역의 평균 기온은 25.9도 수준이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주변 환경보다 10도 이상 높은 체온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셈이다. 특히 이들은 계절에 따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고위도 지역에도 연중 서식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부 온도에 의존하는 변온동물로는 불가능한 생활 패턴이다.
공룡의 체온 조절 방식은 오랜 논쟁거리였다. 1840년대 공룡이 처음 학계에 알려졌을 때는 도마뱀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냉혈동물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공룡이 활발하게 움직인 온혈동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022년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뼈 화석에 남은 대사 부산물을 분석해 대부분의 공룡이 현대 조류만큼 높은 신진대사율을 가졌다는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다만 거대한 몸집으로 어떻게 대사를 조절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박진영 아시아공룡협회 부사무국장(전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존 연구들이 주로 뼈 화석에 의존했던 것과 달리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한 조직인 이빨의 법랑질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 법랑질의 치밀한 미세 구조 덕분에 외부 물질 침투나 내부 성분 유출이 적어 화석화 과정의 교란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부사무국장은 분석 표본이 3개에 불과하고 그중 2개가 동일 개체라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높은 체온과 높은 대사율을 유지하는, 추운 밤이나 겨울철에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사냥꾼이었음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고 평가했다.
어류, 양서류, 파충류는 몸에서 열을 생산하지 못해 외부 환경에 따라 체온이 바뀐다. 반면 포유류와 조류는 열을 만들어 스스로 체온을 조절한다. 화석으로만 남은 공룡은 한때 파충류로 분류돼 외온성 동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이를 반박하는 연구들이 계속 축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