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예산이 821조원으로 편성되며 사상 처음 800조원 벽을 넘어섰다. 올해보다 93조원 늘어난 규모로,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가 뒷받침됐지만 급격한 재정 팽창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2027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내년 총지출 규모는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 727조9000억원 대비 93조원(12.8%) 증가했다. 역대 최고 지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지난해 700조원 시대를 연 지 1년 만에 800조원 시대를 열게 됐다.
재원 확보는 순조롭다. 내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 675조2000억원보다 205조6000억원(30.4%) 늘어난다.
반도체 경기 회복으로 국세 수입이 194조2000억원 증가하는 것이 주요 요인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1.6%에서 48.3%로 낮아질 전망이다. GDP 증가 속도가 채무 증가분을 앞지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분야에 올해 10조8000억원에 이어 내년 21조3000억원을 집중 투입한다.
반도체, 피지컬AI, 데이터센터(AIDC) 등 3대 메가프로젝트 추진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청년 지원도 대폭 강화된다.
청년미래적금의 소득 요건을 없애 전체 청년으로 대상을 넓힌다. 혼인·출산·양육 3대 패키지를 새로 도입해 아동수당 등 지원 규모를 확대한다.
12대 분야별로 보면 일반·지방행정 예산이 내년 149조원으로 27조6000억원 늘어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도 24조6000억원 증액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계층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성장 잠재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재정이 정교한 역할 분담에 나서야 한다"며 "국회가 심의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정부도 적극 존중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수입이 지출을 초과하는 이례적 상황에 대응할 새로운 제도도 마련했다. 예고했던 미래대응기금이다.
내년 기금 수입은 162조3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지원과 주요 성장동력 투자에,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축소에 쓰인다.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남는다. 100조원이 넘는 정부 비상금이 생기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회 감시를 벗어난 정부 '쌈짓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기획예산처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내년 공무원 보수는 3.9% 인상된다. 2011년 5.1%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3.7%)과 정부(2.2%), 한국은행(2.3%)의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번 인상으로 9급 초임 월급은 300만원대에 진입한다.
내년 국가공무원 정원도 3851명 늘어난다. 지난해 말 기준 국가공무원은 75만3689명이다.
2년 만에 정부 예산이 약 150조원 급증한 것은 불안 요인이다. 정부가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정부 예산은 2030년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난다.
이 대통령 재임 중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예산은 331조9000억원으로, 이전 3명 대통령 재임 기간 13년 동안의 증가분(347조9000억원)에 육박한다. 국가채무도 내년 1519조8000억원에서 2030년 1734조1000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정부 지출은 한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혼인·출산·양육 3대 패키지, 농어촌 기본소득 등 규모가 커진 사업들이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질적인 투자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8000억원을 들여 청년문화예술패스를 모든 청년으로 확대한다는데 그냥 10만원씩 나눠주는 것뿐 어떤 정책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AI 확산 등으로 취업난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데, 구체적인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