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서비스 전성시대에 등장한 예상 밖의 복고 아이템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Z세대가 오히려 CD플레이어를 찾으면서 음악 소비 트렌드에 의외의 변화가 포착됐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가디언이 영국 백화점 존루이스 데이터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CD플레이어 검색량이 96% 급증했다고 밝혔다. 크로슬리 보이저(79파운드·약 15만원)와 퓨어 클래식 C-D6(129파운드·약 24만원) 같은 인기 모델은 온라인 판매처에서 품절 사태를 빚었다. 휴대용 CD플레이어 역시 판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물 음반 시장도 CD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음악·엔터테인먼트 시장조사업체 루미네이트 조사 결과,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1630만장의 CD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16% 늘었다. 같은 기간 LP 판매 증가율 2.4%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젊은 층의 CD 선택에는 경제적 요인이 작용했다. 영국 기준 LP 한 장이 약 35파운드(약 6만5000원)인 반면 CD는 약 12파운드(약 2만2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실물 음반을 소장하고 싶지만 예산이 부족한 젊은 소비자에게 CD가 현실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같은 앨범도 포맷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오아시스의 데뷔작 'Definitely Maybe' 영국 초판 다몬트 프레싱은 상태에 따라 150~250파운드에 거래되고, 일반 재발매 LP도 25~30파운드 선이다. 하지만 CD는 약 4파운드면 구매할 수 있다.
소비자 연령층도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인다. 과거 CD 시대를 경험한 세대의 향수 소비를 넘어, 스트리밍과 스마트폰 세대인 젊은 소비자들이 CD를 새로운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CD를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물리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한다.
영국 기술 전문지 스터프의 톰 모건-프리랜더 부편집장은 스마트폰 이탈 욕구, 향상된 음질, 제한된 가처분소득을 CD플레이어 인기의 배경으로 분석했다. 턴테이블과 스피커를 별도로 구입하는 대신 약 150파운드(약 28만원)짜리 CD플레이어 일체형 오디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으로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이 끊임없이 새 음악을 추천하는 스트리밍과 달리, 스스로 선택한 CD 한 장이 주는 특별함이 소비자를 끌어당긴다.
Z세대 트렌드를 다루는 제이나에 필립스 작가는 무한 음악 시대에 한 장의 앨범을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경험 자체가 매력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알고리즘 추천 대신 음악을 하나의 물건이자 경험으로 소비한다는 의미다.
브랜드 전략가 알렉시 거너는 휴대용 CD플레이어와 유선 헤드폰 사용을 '과시적 오디오필리아(performative audiophilia)'로 정의했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무선 오디오가 일상화되면서 사라진 음악 감상의 물리적·감각적 경험을 되찾으려는 반작용이라는 해석이다.
K팝 팬덤의 수집 문화도 CD 부활에 한몫했다. 영국 음반·엔터테인먼트 유통업체 HMV의 CD 판매량은 전년 대비 10% 늘었다. HMV는 아티스트들이 CD에만 제공하는 독점 콘텐츠도 판매 증가 요인으로 꼽았다.
필 할리데이 HMV 매니징디렉터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K팝이 엄청난 동력이 됐다"며 "BTS는 이런 부활을 이끈 아티스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아리아나 그란데, 올리비아 딘 등 다른 아티스트의 CD를 구매하는 소비자도 증가 추세다.
루미네이트 자료를 보면 K팝 판매를 제외할 경우 올해 상반기 미국 CD 판매 증가율은 16%에서 6.7%로 하락한다.
K팝이 CD 판매 증가를 상당 부분 견인한 셈이다. BTS의 컴백 앨범 'ARIRANG'은 발매 첫 주 미국에서 실물 음반 51만6000장이 팔렸고, 이 중 30만8000장이 CD였다. 하지만 K팝을 제외하고도 CD 판매가 늘었다는 점에서 특정 팬덤만의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CD가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지 LP처럼 독자적 시장으로 자리 잡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LP에 이어 CD까지 과거 음악 매체가 젊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면서 실물 음반 시장의 재편 가능성에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