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명문대 합격통지를 받고도 입학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AI 시대 취업 불안이 커지면서 대학 학위보다 실무 경험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2일(현지 시간) 아시아경제가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에서 법률·금융·컨설팅 등 대학 졸업생의 진출이 일반적이었던 분야에서 고교 졸업생을 견습생으로 뽑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보고서에서 AI 확산이 노동시장의 초급 일자리를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반복적이고 기초적인 업무를 맡던 신입 직원의 진입 기회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루마이사 칸(23)은 옥스퍼드대 합격을 뒤로 하고 로펌 에버셰즈 서덜랜드의 견습생 과정을 선택했다. 법률 업계가 AI 업무 도구를 빠르게 도입하는 상황에서 대학에 진학하면 실무 경험은 쌓지 못한 채 막대한 학자금 대출만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새뮤얼 랭킨(23)도 영국 대학 4곳의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은행 견습 과정을 택했다. 그는 "전통적인 대학 학위는 위험 부담이 큰 도박처럼 느껴졌다"며 "AI 시대에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메리 아마누엘(25)은 더럼대와 맨체스터대를 포함한 영국 명문 대학 5곳에 합격했지만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데이터 분석가 견습 과정을 선택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암 조기 발견을 위한 머신러닝 모델 개발에 참여하며 "대학에 갔다면 얻을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블루칼라 직종에 주로 국한됐던 견습생 채용이 최근 법률·금융·컨설팅 등 사무직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고교 졸업생을 일찍 채용해 더 오랜 기간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과 업무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 학생고용주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기업의 견습생 채용은 8% 증가한 반면 대학 졸업생 채용은 8% 감소했다.
회계법인 그랜트 손턴의 경우 2010년 신입 교육생 채용 가운데 견습생 비중이 10%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대학 졸업생과 견습생 채용 규모가 비슷한 수준이다. 회사 측은 견습생의 경력 전망과 승진 기회도 대학 졸업생 프로그램 등 다른 경로로 입사한 직원들과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는 매년 컨설팅·세무·기술·회계 분야에서 1000개 이상의 견습생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PwC 인력 전략 책임자인 칼리 파이크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갖추기 위해 인재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