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31일 이사회서 지분 70.6% 매각 논의
두산은 7개월째 협상...300㎜ 웨이퍼 사업 확보 노려
AI 수요가 높인 몸값...SK는 매각가, 두산은 대체 비용 계산
SK㈜가 31일 이사회에서 SK실트론 지분 70.6% 매각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지 7개월 만이다. 그사이 시장에서 거론되는 SK실트론 기업가치는 5조원 안팎에서 7조~8조원까지 높아졌다.
같은 반도체 호황을 두고 SK와 두산의 선택은 반대로 갈렸다. SK는 실리콘 웨이퍼의 가치가 오른 시점에 매각을 검토한다. 두산은 인수가격이 높아졌는데도 협상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거래 대상은 SK㈜가 직접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통해 경제적 권리를 가진 지분 19.6%다. SK㈜는 지난해 12월17일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두 회사는 당초 올해 상반기 안에 본계약 체결을 추진했지만 가격과 거래 조건을 확정하지 못했다.
협상 기간에 반도체 업황도 달라졌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와 고성능 메모리 생산 확대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원판인 300㎜ 실리콘 웨이퍼의 중장기 수요가 다시 높아졌다. 두 회사가 지난해 말 참고했던 가격표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워진 배경이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8조원이 차입금을 포함한 기업가치인지, 주주에게 귀속되는 지분가치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거래 대상 70.6%의 구체적인 가격과 경영권 프리미엄, TRS 지분 정산 방식도 확인되지 않았다.
SK, 호황기에 팔아야 받을 수 있는 가격
SK가 SK실트론을 파는 이유는 웨이퍼 사업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다. 가치가 높아진 시기에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현금화하고, 확보한 재원을 그룹 사업 재편에 사용할 수 있다.
SK실트론 매각이 끝나 지배력을 잃으면 SK㈜ 연결 재무제표에서 SK실트론의 자산과 부채가 빠질 가능성도 있다. SK실트론의 총차입금은 지난 3월 말 3조855억원, 순차입금은 2조6234억원이다. 매각대금 유입과 함께 연결 재무부담을 낮출 수 있는 구조다.
대신 SK는 그룹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을 내놓아야 한다. SK실트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SK하이닉스가 구매하는 웨이퍼 가운데 SK실트론 비중을 50% 안팎으로 분석했다. 최대주주 변경 이후 SK하이닉스와 SK실트론의 거래 관계가 유지될지도 신용평가의 점검 대상에 올랐다.
매각을 늦춘다고 가격이 계속 오르는 것도 아니다. 300㎜ 웨이퍼 출하량은 AI 수요를 따라 증가했지만 업계 증설 물량과 고객사 재고가 남아 있어 판매단가는 하락세를 이어왔다. SK실트론의 올해 1분기 실리콘 웨이퍼 부문 매출은 4504억원, 영업이익은 629억원으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2%, 37.9% 감소했다.
내년에는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삼성전자 평택 P4 등 신규 생산시설 가동이 예정돼 있다. 현재 가격에 향후 수요 회복분을 얼마나 반영할지가 SK 이사회의 판단 대상이다. 가격을 더 받기 위해 매각을 지연시킬 경우 웨이퍼 판가와 공급량이 다시 변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SK 입장에서는 '팔 것인가'보다 '어느 가격이면 지금 팔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7개월간 협상이 이어진 것도 반도체 호황의 이익을 매각가격에 얼마나 얹을지를 두고 간격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두산, 돈만으로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자산
두산은 가격보다 대체 가능성을 보고 있다. SK실트론은 글로벌 실리콘 웨이퍼 시장에서 매출 기준 4~5위, 300㎜ 웨이퍼 시장에서는 점유율 17~19%로 3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같은 생산능력과 고객 기반을 갖춘 웨이퍼 회사를 다시 찾기는 어렵다.
주력인 실리콘 웨이퍼 사업의 수익도 확인됐다. 이 부문의 영업이익은 2024년 4238억원, 지난해 4075억원이었다. 지난해 판매된 300㎜ 웨이퍼 물량의 80% 초반은 장기공급계약을 기반으로 했다. 반도체 업황이 흔들려도 일정 물량을 판매할 수 있는 계약 구조다.
두산은 이미 전자BG와 두산테스나를 통해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다. 전자BG는 반도체 패키지와 AI 가속기 등에 들어가는 동박적층판을 생산한다. 두산테스나는 시스템반도체 테스트를 맡는다. SK실트론이 편입되면 두산의 반도체 사업은 전자소재와 웨이퍼, 테스트로 넓어진다.
기존 사업의 실적도 인수 협상을 뒷받침한다. 두산 자체사업은 올해 2분기 매출 7652억원, 영업이익 2120억원으로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7.7%였다.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용 소재 판매가 늘어난 결과다. 두산은 지난 27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도 "딜팀이 계속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인수 중단설을 부인했다.
실제 두산 측 관계자는 인사이트에 "딜이 실제 어떻게 되는지는 내부에서 공유되지 않는 상태"라면서도 "딜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밝혔다.
두산이 넘겨받을 대상에는 수익만 있지 않다. SK실트론의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부문은 지난해 214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4141억원의 손상차손까지 반영되면서 SK실트론은 지난해 293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실리콘 웨이퍼 부문은 62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SiC 손실이 더해진 연결 영업이익은 88억원에 그쳤다. SK실트론이 미국 SiC 사업을 정리하고 있으나 재고자산과 유·무형자산이 남아 있어 추가 손실 가능성이 있다.
최대주주 변경과 함께 처리해야 할 차입금도 있다. 지배구조 변경 제한 특약이 붙은 SK실트론 차입금은 지난 5월 말 1조4890억원이다. 거래가 끝나면 해당 차입금을 상환하거나 금융기관과 조건을 다시 협의해야 할 수 있다. SK그룹의 지원 가능성이 제외되면 SK실트론의 신용등급과 조달금리도 달라질 수 있다.
두산이 사려는 것은 연간 4000억원대 이익을 내는 실리콘 웨이퍼 사업만은 아니다. 3조원대 총차입금과 SiC 잔여 손실, 구미 신공장 양산 비용도 함께 넘어온다. 인수가격이 높아진 만큼 거래 종결 이후의 차환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흐름만 놓고 보면 7개월간 이어진 협상은 결렬보다 가격표를 다시 쓰는 과정에 가깝다. SK는 AI 반도체 수요와 구미 신공장의 미래 이익을 가격에 더하려 한다. 두산은 SiC 손실과 차입금, 아직 발생하지 않은 현금흐름을 가격에서 빼야 한다.
SK는 호황기에 팔아 받을 수 있는 가격을 보고, 두산은 호황기에 사지 않으면 치러야 할 시간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