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거침없는 '직설'에 찰스 3세가 품격 있는 '미러링'으로 응수하며 진정한 소프트 파워의 정수를 보여줬다.
지난 28일(현지 시간)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열린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영미 관계의 역사를 관통하는 위트와 냉철한 메시지를 교차시키며 좌중을 사로잡았다.
가장 화제가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지론을 그대로 맞받아친 '언어 유머'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럽은 지금 독일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며 동맹국들을 압박해왔으나, 찰스 3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만찬 건배사에서 "대통령께서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없었으면 유럽 국가들은 지금 독일어를 쓰고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감히 말하건데 우리가(영국이) 없었더라면 여러분은 지금 프랑스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는 독립 전쟁 이전 영국이 프랑스와의 북미 식민지 경쟁에서 승리해 미국의 기초를 닦았던 역사를 빗댄 것으로, 트럼프의 생색 경영을 품격 있게 미러링한 카운터펀치였다.
국왕의 유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거대한 연회장을 신축하려는 계획을 언급하자,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우리 영국인들도 1814년에 백악관 부동산을 '재건축(redevelopment)'하려 작은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1812년 전쟁 당시 영국군이 백악관을 불태웠던 뼈아픈 역사를 '재건축'이라는 비즈니스 용어로 승화시킨 것이다. 또한 건국 초기의 갈등이었던 '보스턴 차 사건'을 언급하며 이번 연회가 그보다 훨씬 큰 진전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자조와 칭송을 넘나드는 화법을 구사했다.
찰스 3세는 유머 속에 날카로운 외교적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NATO) 무용론을 제기하고 영국 해군력을 '장난감'에 비유하며 비하한 것에 대해, 국왕은 의회 연설을 통해 "우리의 동맹은 기초 원칙들이 저절로 지속될 것이라 가정해서는 안 된다"며 80년간 이어온 대서양 동맹의 가치를 무시하지 말라고 점잖게 경고했다. 특히 개인 선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투에 투입됐던 영국 잠수함 '트럼프(HMS Trump)'함의 금빛 종을 전달하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 종을 울려라(ring, 전화하다)"는 언어유희로 양국의 안보 협력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왕의 이례적인 의회 연설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까지 기립하게 만든 정말 훌륭한 연설이었다.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였다"라고 극찬했다.
비록 만찬 말미에 이란 핵 문제 등을 언급하며 국왕이 자신의 강경책에 동의한다고 주장해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번 국빈 방문은 찰스 3세의 노련한 '소프트 파워'가 빛난 자리였다.
35년 만에 성사된 영국 국왕의 미 의회 연설과 백악관 만찬은 거친 '트럼프식 외교'에 품격 있는 위트로 대응하며 진정한 동맹의 의미를 되새긴 역사적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