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8일(토)

"듣는 순간 가슴 저릿"... 남에게 들었을 때 '가장 상처되는' 말 1위는?

국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라는 말이 가장 상처가 되는 표현으로 나타났습니다. 


임상우울증학회가 지난 9월 16~22일 1주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성인 1,1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울증 환자에게 위로 또는 상처가 되는 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되었습니다.


조사 참여자는 남성 270명, 여성 925명이었으며, 연령대별로는 30~39세가 41.6%로 가장 많았고, 40~49세 26.8%, 20~29세 18.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2문항 우울증 설문지(PHQ-2) 결과,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3점 이상)은 488명으로 전체의 40.8%를 차지했습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선의로 건네는 위로의 말 중 일부가 상대방에게 상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상처가 되는 말 1위는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로 응답자의 77%가 상처가 된다고 답했습니다. 이어서 "너무 예민한 것 같으니, 편안하게 생각하세요"가 68.6%, "괜찮아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예요"가 51.2%로 뒤를 이었습니다.


반대로 80% 이상이 위로가 된다고 응답한 표현들도 있었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말해요. 언제든 들어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 죄책감 갖지 마세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도 괜찮아요", "치료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이 길을 함께 걸어갈게요", "당신은 정말 멋지고 소중한 사람이에요" 등이 대표적인 위로의 말로 평가받았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성별에 따른 차이도 흥미로운 결과를 보였습니다. 여성들은 "우리는 이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어요", "당신의 기분이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할 거예요"와 같은 공감적 표현에서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주어 더 큰 위로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성의 경우 동일한 표현을 상대적으로 중립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변화의 한 걸음씩 나아가는 건 괜찮아요"와 같은 격려성 표현 역시 여성 집단에서 더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의정부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허연 교수는 우울증 환자들이 주변의 위로와 격려의 말에 대해 일반인과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우울증이 의심되는 사람(488명)과 그렇지 않은 사람(707명)을 비교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우울증 의심 그룹이 상처가 된다고 답한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특히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의 경우 우울증 의심 그룹에서 86.9%, 비의심 그룹에서 68.8%가 상처가 된다고 응답했습니다.


"너무 예민한 것 같으니, 편안하게 생각하세요"는 79.8% 대 37.1%, "힘내세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는 68.9% 대 37.1%, "운동이나 취미 활동을 하면 나아질 거예요"는 67.1% 대 33.2%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허연 교수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조언이나 비교보다는 조건 없는 지지와 공감, 감정 수용이 더 큰 힘이 된다"며 "선의로 건넨 말이 때로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번 결과는 우울증 환자와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가 보다 따뜻하고 섬세한 소통 방식을 고민해야 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조사 결과는 오는 19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개최되는 '2025년 임상우울증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구체적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학술대회에서는 우울증의 병태생리와 진단의 최신지견, 우울증의 유전학과 생체표지자 연구의 현재,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우울증, 노인 우울증의 이해와 치료 전략, 현장에서 바로 쓰는 우울증 약물치료 가이드, 다른 정신질환과 동반된 우울증의 임상적 이해와 치료 전략, 1차 의료에서 효과적인 우울증 상담전략 등의 내용으로 진행됩니다.


설문조사를 주도한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식 명예교수는 "이 연구 결과는 언어적 위로의 수용 방식이 성별이나 우울증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개인의 특성과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심리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단순한 위로보다 상대방이 공감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표현이 중요하다"며 "특히 여성 집단이 공감적 언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한편, 김영식 회장은 정신건강 관련 보험 차별 문제도 지적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우울증 등 정신건강 관련 진단으로 실손보험 가입이나 보험청구에서 불이익을 경험한 경우가 9.8%로 나타났으며, 표준약관 개정을 통해 정신질환을 급여 범위 내에서 보장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에도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에서 불이익 경험자가 11.9%로 비가입자 6.7%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김영식 회장은 "이는 우리사회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차별이 아직도 여전함이 확인된 것"이라며 "학회는 우울증 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불이익이나 차별을 받지 않도록 대정부 정책수립이나 대국민 홍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