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성장 속도, 중국의 6분의 1에 불과... 글로벌 경쟁력 격차 심화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보다 6.3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과 미국, 중국 기업 간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3일 미국 경제지 포브스의 '글로벌 2000' 통계를 분석한 '글로벌 2000대 기업 변화로 본 韓·美·中 기업삼국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포브스 글로벌 2000은 시장 영향력, 재무 건전성, 수익성이 우수한 기업들을 선별한 리스트로, 각국 기업들의 글로벌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20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기업들의 합산 매출액은 지난 10년간 1조5000억 달러에서 1조7000억 달러로 15%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같은 기간 4조 달러에서 7조8000억 달러로 95% 증가했습니다. 한국 기업보다 6배 이상 빠른 성장세를 보인 셈입니다.
미국 기업들도 11조9000억 달러에서 19조5000억 달러로 63% 증가하며 한국을 크게 앞질렀습니다.
글로벌 2000대 기업 수 변화, 한국만 감소세
글로벌 2000대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기업 수에서도 국가별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미국 기업은 2015년 575개에서 2025년 612개로 6.5% 증가했고, 중국 기업은 180개에서 275개로 무려 52.7%나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66개에서 62개로 오히려 6.1% 감소했습니다.
성장 동력에서도 국가별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미국은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한 고성장 기업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엔비디아(2787%), 마이크로소프트(281%), 유나이티드헬스(314%) 등 AI와 헬스케어 분야 기업들, 그리고 테슬라와 우버 같은 혁신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신흥 강자 기업'을 배출하는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알리바바(1188%), BYD(1098%), 텐센트(671%) 등 IT와 제조업 기반의 신생 기업들이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반면 한국은 SK하이닉스(215%), LG화학(67%) 등 전통 제조업과 KB금융(162%), 하나금융(106%) 등 금융업이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새롭게 글로벌 2000에 진입한 한국 기업들도 삼성증권, 카카오뱅크, 키움증권, iM금융그룹, 미래에셋금융그룹 등 주로 금융 기업들이었습니다.
기업 규제, 한국 기업 성장의 걸림돌로 지적
대한상의는 한국 기업들의 성장 부진 원인으로 '기업 규제'를 지목했습니다. 특히 기업이 커질수록 규제가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교수가 상법·공정거래법 등 주요 법률 12개를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때 적용 규제가 94개로 늘어났습니다.
대기업을 넘어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분류되면 343개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한상의는 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업 규모가 커졌다고 더 많은 규제를 가하기보다는, 산업별 영향평가를 실시해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한상의는 "반도체, AI 등과 같이 대규모 투자와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첨단산업군에 한해서라도 우선적으로 차등 규제를 제외시켜 산업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어 '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전략기술에 대한 규제 예외조항을 삽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한국은 중소에서 중견,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중이 각각 0.04%, 1~2%에 불과하다"며 "미국이나 중국처럼 무서운 신인 기업이 쏟아질 수 있는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