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서 빛난 숭고한 희생, 그러나 남은 의문들
인천 영흥도 갯벌에서 70대 노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순직한 해양경찰관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족들은 해경의 부실 대응 의혹을 제기하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지난 11일 중부지방해양경찰청 특공대는 이날 오전 9시 41분께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고(故) 이재석 경장(34)을 발견했습니다.
심정지 상태로 인양된 이 경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이날 오전 2시 7분께, 대조기를 맞아 순찰 중이던 드론 업체가 갯벌에 사람이 앉아 있는 영상을 확인하고 영흥파출소에 연락했습니다.
이에 이 경장은 상황 파악을 위해 현장에 출동했고 오전 3시 30분께 밀물에 고립된 A씨를 발견했습니다. A씨는 어패류를 잡다 발을 크게 다쳐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오르자 이 경장은 A씨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건네준 뒤 함께 헤엄쳐 나오다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습니다.
순찰용 드론에 찍힌 마지막 영상에는 손전등과 무전기를 든 이 경장이 A씨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는 모습과 함께 상공을 비행 중인 드론을 향해 두 손으로 원을 만들어 보이는 장면이 담겼습니다.
해경 헬기에 의해 구조된 A씨는 저체온증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입니다.
유족들이 제기하는 의문점
1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경장의 사촌 형인 B씨는 빈소가 마련된 인천 동구 장례식장에서 "고립자 구조 시 2인 1조가 원칙인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당시 당직자가 두 명이 있었는데 왜 사촌 동생만 현장에 출동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재석이만 혼자 나간 이유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천해경은 드론업체가 이 경장이 구명조끼를 건네고 9분 뒤 물이 많이 차 있다는 이유로 지원인력 투입을 요청했고, 1분 뒤 영흥파출소 직원들이 현장으로 나갔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족들은 해경의 설명에 대해 "물이 찼다는 얘기를 듣고 즉시 추가 인원을 보냈으면 재석이는 살아 돌아왔다"며 "시스템이나 매뉴얼 상 절대 일어날 사고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해경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처음에는 현장 확인차 1명만 나갔다"며 "고립자를 발견했을 때 이 경장이 추가 지원을 요청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B씨는 "사촌 동생의 죽음이 개인의 희생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제2의 이재석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유족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한편, 해병대 만기 전역 뒤 오랜 준비 끝에 2021년 해양경찰 순경 공채로 입직한 이 경장은 인천해경 300t급 경비함정과 영흥파출소에서 근무하며 여러 차례 경찰 표창을 받을 정도로 안전관리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온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는 지난달 경장으로 승진했으며, 지난 4일 생일이었음에도 주꾸미잡이 철을 맞아 연가를 내지 않고 근무를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이 경장의 장례는 중부해경청장 장으로 엄수되며, 영결식은 오는 15일 인천해경청사에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해경은 순직 절차를 신속히 추진하는 한편, "자신을 희생해 타인의 생명을 구한 고인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