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감소 추세, 생명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희망은?
"지금도 누군가는 하루하루 목숨을 기다립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장기 등을 기증한 사람은 총 3,931명으로, 전년 대비 11.3% 감소했습니다. 특히 뇌사 기증은 17.8%, 사후 기증은 무려 73.7%나 급감했습니다. 한 사람의 결심이 여러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 사회는 점점 장기기증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5일 발표한 '2024년도 장기 등 기증 및 이식 통계 연보'에 따르면, 장기기증자 감소는 단순히 개인의 의사만이 아닌 가족 동의, 병원 시스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기증자 수 감소는 자연스럽게 이식 수술 건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장기 이식은 총 5,054건으로, 전년보다 15% 줄었습니다.
반면 장기 이식 대기자는 계속 증가해 지난해 말 기준 5만4,789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의 평균 대기 기간은 2,193일, 약 6년에 이릅니다. 특히 췌도는 11.5년, 소장은 9.8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입니다.
장기기증 활성화를 가로막는 제도적·인식적 장벽
전문가들은 한국의 낮은 장기기증률이 단순히 국민들의 의지 부족이 아닌, 제도와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병원 현장에서는 뇌사자가 발생해도 장기기증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가족이 반대하거나, 의료진이 기증 절차를 제대로 안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생전에 기증 의사를 등록했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무산되는 현행 제도는 개인의 기증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장기기증률이 높은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스페인은 '추정 동의제(Opt-out)'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장기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며, 원치 않을 경우에만 거부 의사를 등록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제도 덕분에 스페인의 인구 100만 명당 뇌사 기증자는 47.95명으로, 한국(7.75명)의 6배가 넘습니다.
미국은 병원 내에 전문 코디네이터를 상주시켜 뇌사자 발생 시 유가족에게 기증을 안내하고 절차를 지원합니다.
영국은 초등학교부터 생명윤리 교육을 실시해 장기기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으며, 독일은 스마트폰 앱이나 온라인 포털을 통해 기증자 등록을 간편화하고 본인의 의사가 가족 반대보다 우선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다섯 가지 개선 방안
전문가들은 한국도 현재의 '선택 동의제'에서 벗어나 법적·사회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첫째, 생전 기증 의사 등록 시스템의 디지털화가 필요합니다.
스마트폰 앱이나 건강보험앱을 통해 누구나 쉽게 장기기증 의사를 등록하고, 이를 병원과 코디네이터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시급합니다.
둘째, '추정 동의제' 도입을 검토해야 합니다.
기증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되, 원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론화와 충분한 합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셋째, 병원 내 장기기증 코디네이터를 확대해야 합니다.
모든 종합병원에 기증 절차를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해 실질적인 기증 연결률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넷째, 기증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강화해야 합니다.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국가적 예우 체계를 마련하고, 장례비 지원, 감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청소년 대상 교육과 대중 캠페인을 확대해야 합니다.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을 줄이기 위한 교육과 미디어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장기기증은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생명을 잇는 가장 인간적인 연대입니다.
현재도 수만 명이 간절히 누군가의 결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시작은 아주 작은 클릭 하나일 수 있습니다.
'기증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기증하지 않겠다는 의사'만 표현하면 되는 세상을 향해 한국도 그 길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