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분해하는 애벌레, 새로운 생태적 메커니즘 발견
플라스틱 오염이 전 세계적인 환경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이를 대사작용을 통해 분해한 후 체내 지방으로 저장하는 새로운 생태적 메커니즘이 과학계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발견은 플라스틱의 생물학적 분해 경로를 밝혀내는 중요한 연구로, 향후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 방안 개발에 획기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캐나다 브랜던대학교의 브라이언 캐손 교수 연구팀은 플라스틱을 먹어치우고 이를 대사작용으로 분해하는 애벌레의 대사 경로와 건강 상태 변화를 심층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개최된 '실험생물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8일(현지 시간) 발표되었습니다.
왁스웜의 놀라운 플라스틱 분해 능력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꿀벌부채명나방(Galleria mellonella)의 애벌레인 '왁스웜'입니다. 이 작은 생물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PE)을 섭취하고 짧은 시간 내에 분해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약 2000마리의 왁스웜이 0.5g 무게의 폴리에틸렌 비닐봉지 한 장을 24시간 이내에 분해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연구팀은 분자생물학, 생리학, 유전체학, 재료과학 분석 기법을 총동원하여 왁스웜 체내에서 플라스틱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왁스웜이 섭취한 플라스틱을 분해해 지방으로 변환하여 체내에 축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플라스틱 분해와 지방 저장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대사 경로도 확인했으며, 플라스틱이 애벌레 체내에서 화학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잔여물과 배설물의 화학 조성 변화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왁스웜은 소화 과정에서 플라스틱을 지방산으로 분해한 후 이를 인간의 지방세포와 유사한 방식으로 체지방으로 저장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캐손 교수는 "사람이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체지방으로 저장하는 것처럼, 왁스웜도 플라스틱에서 분해된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지 않고 체내에 저장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플라스틱 분해 기술의 실용화 가능성
그러나 플라스틱만을 먹이로 제공받은 왁스웜은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며 며칠 안에 사망하는 한계점도 발견되었습니다.
캐손 교수는 "적절한 당류 등의 보조 영양원을 함께 제공할 경우 왁스웜의 분해 효율을 유지하면서 생존력도 개선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연구팀은 왁스웜의 플라스틱 분해 능력을 활용한 두 가지 응용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당류 등 보조 영양소와 함께 폴리에틸렌 위주 식단을 제공하여 왁스웜을 대량 사육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생물학적으로 처리하면서 동시에 분해 주체인 왁스웜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왁스웜이 하루 만에 비닐봉지 한 장을 분해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가진 만큼, 플라스틱 분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플라스틱 분해에 중요한 대사 과정을 별도로 추출하여 애벌레 없이도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구팀은 현재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효소'나 '장내 미생물'을 찾아내고, 생명공학 기술로 이를 재구성하여 실험실이나 공장 등에서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 중입니다.
또한, 왁스웜 자체도 새로운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왁스웜이 고단백 생물체로서 양식 산업에서 어류용 사료 등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캐손 교수는 "실험에 따르면 왁스웜은 식용 어류에 적합한 고영양 공급원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