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위층의 서구식 소비 문화 엿보기
북한의 상위계층이 이용하는 서구식 매장이 존재한다는 외국인 방문객들의 증언이 공개되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최근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 스웨덴 마라톤 선수, 중국 유학생 등 세 명의 방문객으로부터 평양에서 촬영된 동영상을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호텔 / 뉴욕타임스
이 영상에는 스타벅스와 이케아를 연상시키는 판매점들이 등장했으며, 일부 고객들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해 상품을 결제하는 모습도 포착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북한의 폐쇄적 이미지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인 어학연수생 A씨가 촬영한 영상에는 '낭랑 애국 금강관'이라는 이름의 고급 쇼핑몰이 담겨 있었습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쇼핑몰은 가구와 주방용품, 식료품 등을 판매하며 중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북한판 이케아'로 불린다고 합니다.
매장 구조와 제품들이 스웨덴 가구 제조·판매업체인 이케아 매장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케아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포장, 상품명까지 동일한 제품들이 다수 발견되었으나, 이것이 모조품인지 정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결제와 현대적 소비 문화의 확산
북한 평양의 쇼핑몰 '낭랑 애국 금강관' 내부 / 뉴욕타임스
해당 쇼핑몰 내부에는 '미래 리저브'(Mirai Reserve)라는 이름의 커피숍도 운영 중입니다.
이 매장은 스타벅스의 프리미엄 매장인 스타벅스 리저브를 모방한 듯한 모습으로, 로고 아래에는 리저브의 'R'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북한 주민의 1인당 평균 연소득은 143만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미래 리저브에서는 커피 3잔에 25달러(약 3만 4000원)라는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 있어, 한국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톨사이즈 4700원)보다도 비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A씨는 "보통 미국 달러로 결제하는데, 평양의 물가는 비싼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유엔제재로 인해 외국 기업이 북한에서 사치품을 판매하거나 합작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북한 평양의 쇼핑몰 '낭랑 애국 금강관'에 있는 카페 '미래 리저브' / 뉴욕타임스
스타벅스와 이케아 측은 북한에 공식 판매 채널이 없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짝퉁' 매장들이 공공연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4월 평양 마라톤에 참가했던 스웨덴 선수 요한 닐란더는 평양에서의 결제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졌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는 "생수와 주스 등을 판매하는 노점상에서도 현금보다는 QR 코드를 이용한 디지털 결제를 선호했다"며 북한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이 상당히 발달해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관광산업 발전과 북한의 이중성
북한은 지난 6월 '원산 갈마해수욕장 단지'라는 리조트 프로젝트를 공개했습니다.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을 연상시키는 4km 길이의 모래사장을 따라 새로운 호텔들이 줄지어 들어선 이 리조트는 북한의 관광산업 발전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북한 호텔 내부와 외부 전경 / 다리아 주브코바, 뉴욕타임스
김정은 위원장은 당시 워터파크를 방문해 관광객들이 워터슬라이드를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는 영상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원산 해수욕장은 지난달 처음으로 12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했습니다.
이 중 한 명인 러시아 출신 수의사 다리아 주브코바(35)는 일주일 여행에 약 1400달러(약 194만원)를 지불했다고 전했습니다.
주브코바는 "리조트까지 우릴 데려다준 기차부터 호텔 객실, 그리보 해변 편의시설까지 모든 것이 새것처럼 보였다"면서 "나를 위해 그려진 그림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구하기 어려운 어그 부츠를 구입하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감시받는 느낌은 없었지만, 어디를 가든 인명구조 요원이나 웨이트리스, 의사 등 직원들이 항상 근처에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강동완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북한의 이중성을 보여준다"면서 "북한 정권은 평양을 현대적인 도시로 과시하고 싶어하는 한편, 서구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중성을 띤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