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소녀의 하루를 빛내준 소년
29년 전, 한 중학교를 다니는 김하나(당시 15)라는 이름의 소녀가 사라지는 시간이 있었다.
소녀는 종례가 끝나면 가방을 메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 밖으로 빠져나갔다. 소녀의 목적지는 집이 아닌, 포철공고 축구부 연습장이었다. 그곳에는 그녀의 하루를 빛내주는 소년, 이동국(당시 17, 현재 46)이 있었다.
JTBC '국대흥신소'
김하나 씨(현재 44)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동국) 오빠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좀 많이 따라다녔어요"
포철공고 축구부에서도 유명했던 소녀는 '포철공고 이동국의 첫 팬'으로 불렸다. 이동국의 경기가 끝나면 언제나 사진을 찍으며 그 기쁨을 만끽했다.
김 씨는 굳이 이런저런 말을 걸지 않았고, '첫 팬'이 어색했던 이동국 역시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첫 덕질'과 '첫 팬서비스'의 조화는 오묘하게 이어져갔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소녀와 선수의 거리는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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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스타가 된 이동국... 멀어진 거리
이동국이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해 깜짝 스타가 되고, 경기장에 팬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소녀는 그렇게 다른 팬들의 뒤에 서게 됐고, 서서히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생기며 한 걸음 물러서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동국은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국가대표 스타가 되고, K리그의 전설이 됐다.
은퇴 이후에는 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네 아이의 다정한 아빠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국민들에게는 '라이언킹'이자 '딸바보 아빠'로 남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잊히지 않는 한 소녀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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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의 재회... "그때 오빠가 제 전부였어요"
그리고 29년 만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방송 제작진의 도움으로 이뤄진 재회 자리에서, 김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는 제 첫 덕질의 대상이자 마지막 덕질의 대상이었어요."
소녀티를 벗고 당당한 어른이 된 김하나 씨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가 나이를 먹는 모습을 꾸준히 볼 수 있어 좋았다"라며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동국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첫 팬'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미리 써놓았던 손편지를 전했다. 편지를 받은 하나 씨는 울컥했다.
첫 번째 팬에게 전한 첫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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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첫번째 팬에게 첫번째로 줘야지"라며 "30년이 지나서야 편지를 쓰네"라고 말했다. 이동국이 팬에게 직접 처음 쓰는 편지였던 것이다.
이동국은 편지를 꽉 채웠고, 그 편지의 말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포철공고 축구부 이동국'
글을 읽어 내려간 하나 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29년 전, 운동장 구석에서 떨리는 손으로 적었던 응원 쪽지처럼, 이번엔 이동국의 글자가 그녀의 가슴을 조용히 울렸다.
누리꾼들은 "29년 전 소녀의 순수함도, 이동국의 진심도 너무 아름답다", "이런 이야기가 진짜 사람 마음을 울린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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