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5일(일)

사체에서 빼낸 '성장 호르몬' 주입한 7살 소녀... 50년 뒤 '이 병' 걸려 숨졌다


어린 시절 사체에서 추출한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은 여성이 약 50년이 지난 후 해당 약물로 인한 희귀병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보고됐다.


미네소타 대학교 감염병 연구 및 정책 센터(CIDRAP)는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리온 질환으로 사망한 58세 여성 A씨의 사례를 공개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A씨는 어린 시절 사체 추출 성장 호르몬(chGH)을 투여받았으나 수십 년 동안 특별한 신경학적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58세가 되었을 때 몸에 떨림 증세가 나타나고 걸을 때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몇 주 동안 요실금, 언어 장애, 우울증, 호흡 곤란 증세를 겪다가 병원에 입원한 뒤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 사망했다.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결과 뇌 손상이 발견됐고, 추가 검사에서 프리온 단백질 양성으로 확인됐다. 프리온은 세포막에 존재하며 세포 통신 및 상호 작용에 관여하는 분자로, 이 단백질이 뇌에 쌓이면 주변 단백질이 뒤틀려 신경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다. 부검 결과 A씨는 변종 프리온에 의해 발생하는 희귀 질병인 의인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iCJD)으로 확진 받았다.



iCJD는 뇌에 구멍이 뚫려 뇌 기능을 잃게 되는 퇴행성 신경성 질환으로,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으며 발병하면 반드시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A씨는 7세 때부터 '범뇌하수체기능저하증(panpanhypopituitarism)' 치료를 위해 9년 동안 사체 추출 성장 호르몬을 투여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범뇌하수체기능저하증은 호르몬을 생성하는 뇌하수체의 기능이 저하되어 성장과 성적 발달에 관여하는 다양한 호르몬이 결핍되는 질환이다.


콜로라도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국립 뇌하수체 호르몬 프로그램(NHPP)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약 7700명의 미국 환자들에게 성장 부전 등의 치료를 위해 이 약물을 투여했다.


당시에는 범뇌하수체기능저하증 환자에게 사체에서 추출한 호르몬을 주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으며, 난소에서 난자를 생산하지 않는 여성에게도 이러한 호르몬이 투여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1985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chGH 관련 iCJD 발병이 보고되자 chGH의 생산과 투여가 즉시 중단됐다.


이후 사체 추출 성장 호르몬은 유전공학으로 생산된 합성 대체 호르몬으로 대체됐지만, 이전 투여자 중 일부는 긴 잠복기를 가진 iCJD가 발병하는 사례가 지속됐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사체의 장기에서 채취한 성장 호르몬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 중 0.4%가 iCJD에 걸린 것으로 보고됐다.


연구진은 chGH 치료로 인한 iCJD 발병이 최근 몇 년 동안 둔화됐지만, 새로운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과거 chGH에 노출된 환자의 경우에는 iCJD 감별 진단을 꼭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