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5일(일)

낙태금지법 때문에... '뇌사' 상태인데 태아 키우려고 강제로 생명 유지되고 있는 여성


미국 조지아주의 한 병원이 뇌사 판정을 받은 임신부에게 가족의 동의 없이 강제로 생명유지 장치를 부착해 논란이 일고 있다.


조지아주의 엄격한 낙태금지법 때문에 태아가 출산 가능한 시기까지 임신부의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병원 측의 결정이 윤리적, 법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좌) 아드리아나 스미스, (우) 아드리아나 스미스와 그녀의 첫째 아들 / NBC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국 NBC 뉴스에 따르면,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위치한 에머리대병원은 뇌사 상태인 아드리아나 스미스(Adriana Smith, 30)에게 인공호흡기를 연결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어머니 에이프릴 뉴커크(April Newkirk)에 따르면 스미스는 2월 초부터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당시 스미스는 둘째 아이를 가지고 있었고, 임신 9주 차였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스미스는 노스사이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해 약을 처방받았다. 뉴커크는 병원에서 어떠한 검사도 실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스미스의 남자친구는 치료를 받은 다음날 스미스가 양치질을 하며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의식을 잃은 스미스는 에머리대병원에 이송됐고 뇌출혈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후 스미스는 호흡장치를 달아 90일 넘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드리아나 스미스의 어머니 에이프릴 뉴커크 / NBC



어머니 뉴커크는 현지 매체 '11얼라이브'와의 인터뷰에서 "선택을 가족에게 맡겨야 했다. 선택권이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선택 자체를 박탈당한 점이 부당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딸의 임신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가족이 선택권을 가졌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공호흡기가 달린 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고문'과 같다고 표현하며, 가족들은 계속 늘어나는 병원비에 대한 금전적 부담도 호소하고 있다.


조지아주는 태아의 심장 활동이 감지될 수 있는 임신 6주부터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 태아 기형이 발견된 경우, 경찰에 신고된 강간 및 근친상간 등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낙태 시술을 허용하고 있다.


병원 측은 이 법을 준수해야 한다며 스미스 가족의 동의 없이 생명유지 조치를 취했고, 태아가 스스로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최소 32주가 될 때까지 연명의료를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의료 전문가들은 임신 초기에 뇌사 판정을 받은 임부가 강제 생명유지 조치를 통해 건강한 태아를 성공적으로 출산한 사례는 알려진 바 없다고 지적한다.


과거 뇌사 상태의 임부가 건강한 태아를 출산한 사례들은 대부분 임신 6개월 이후에 뇌사 판정을 받은 경우였다.


에머리대병원 / bkimechanical


논란이 확산되자 조지아주 낙태금지법 통과를 주도했던 공화당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조지아주 법무장관실은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뇌사 상태 환자의 생명유지 중단은 낙태금지법상 낙태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공화당이 다수인 조지아주 하원 공보실은 "이번 사례는 낙태금지법과 전혀 관련이 없다"며 "진보 성향 언론매체들과 좌파 활동가들이 입법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9년 이 법을 발의했던 공화당 에드 세츨러(Ed Setzler) 조지아주 상원의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에머리대병원이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다"며 강제 생명유지 조치가 법의 입법 의도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이한 상황이긴 하지만, 무고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죽음에 의료적 조력을 지지하는 단체 '컴패션 앤드 초이시즈(Compassion & Choices)'의 제스 페즐리(Jess Pezley) 선임 변호사는 "이 임신한 사람은 무척, 무척 가슴아픈 방식으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례는 미국 전역에서 낙태권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엄격한 낙태금지법이 예상치 못한 의료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