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3일(화)

혼수 하라며 반지까지 빼주던 각별한 인연... 故 이해찬과 유시민의 영화 같은 45년 서사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74세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40여 년간 동지로 지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과의 각별한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이 전 총리의 장례 첫날, 유 전 이사장은 상주 역할을 맡아 조문객들을 맞이했습니다. 


상주 역할을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유 전 이사장은 "상주여서 상주를 하게 됐다"며 "더는 답변드리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origin_유시민전노무현재단이사장故이해찬전총리빈소방문.jpg이해찬의 보좌관을 지냈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 뉴스1(공동취재)


기관·사회장으로 진행된 장례식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상임장례위원장 등의 공식 직함을 가진 것과 달리, 유 전 이사장은 별다른 직함 없이 상주석에서 조문객들을 맞았습니다. 


김부겸, 한명숙 전 총리와 함께 헌화하는 동안 유 전 이사장의 눈시울은 계속 붉어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0년 '서울의 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0·26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붕괴한 후, 1980년 신군부의 5·17 내란 발발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에서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던 유시민과 복학생협의회장이던 이해찬은 음향시설 철거 문제로 멱살을 잡고 욕설을 주고받으며 크게 다툰 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격렬한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민주화 운동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image.png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서울 관악을 평화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해찬 후보의 포스터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두 사람의 우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유 전 이사장이 결혼을 앞두고 혼수를 마련하기 어려워하자, 이 전 총리의 부인 김정옥 씨가 자신의 반지를 빼서 유 전 이사장의 부인 현경혜 씨에게 주라고 했다는 일화입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 전 총리는 가장 먼저 유시민을 '첫 보좌관'으로 영입하며 그를 정계로 이끌었습니다. 


보좌관 시절 유 전 이사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청문회 질의서를 탁월하게 작성해 이 전 총리를 노무현·이철 의원과 함께 청문회 3대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전 총리는 당시를 회상하며 "유 보좌관이 작성한 질의서는 토씨나 고쳐야 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이후 이 전 총리는 유 전 이사장의 정치적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99년 1월 교육부장관이던 이 전 총리는 유 전 이사장을 교육부 산하 학술진흥재단 기획실장으로 추천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교육부 업무보고 청취1998년 4월 김대중 정부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故 이해찬 전 총리의 모습 / e영상역사관


2006년 1월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유 전 이사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하자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 전 총리는 이를 반대했습니다. 


유 전 이사장이 야당에 미운털이 박힌 상황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저서 '바보 산을 옮기다'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당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언성을 높이자, 이 전 총리는 "감정적으로 그러지 마라"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원칙대로 가는 게 맞다"며 발표를 강행했고, 이 전 총리가 계속 반대하자 "그럴 거면 그만두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이후 유 전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고,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정계 은퇴 이후에도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2018년 10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으며 후임으로 유 전 이사장을 지명했습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유 전 이사장은 정계 복귀 가능성을 경계하며 이사장직 수락을 망설였습니다. 


origin_손잡은이해찬유시민.jpg지난 2018년 10월 15일 노무현재단 신임 이사장 위임식에서 악수하는 유시민 작과와 故 이해찬 총리 / 뉴스1


이에 이 전 총리는 "자네가 내 등골 빼먹으려고 나를 당 대표로 밀었다는데 그러면 자네도 내가 비우게 되는 자리를 맡아줘야 할 것 아니냐"며 "자유인으로 남고 싶으면 차라리 재단 이사장을 맡는 게 나을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해 승낙을 받아냈습니다.


이 전 총리는 당시 이취임식에서 유 전 이사장에 대해 "2002년 선거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가장 잘 실천하는 공직 생활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유 전 이사장은 2007년 펴낸 자신의 책에서 이 전 총리에 대해 "이해찬이라는 사람을 안 지 28년이 됐다. 나에게 그는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선배였다. 나는 그에게서 현실 정치와 입법의 원리를 배웠다. 그는 내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귀한 가르침을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는 인생의 스승이다"라고 썼습니다.


또한 "이해찬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사무사의 정치인'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삿되거나 간사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라며 "매 순간 선택을 요구받는 것이 정치인데, 그는 스스로 정당화할 수 없는 타협이나 아부를 절대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운동권 대부'였던 이 전 총리는 7선 국회의원과 장관, 국무총리, 당 대표를 거치며 4명의 대통령 탄생에 기여했습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며 175석으로 압승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origin_故이해찬전총리영정사진.jpg故 이해찬 전 총리 영정사진 / 뉴스1(사진공동취재단)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했던 그는 지난해 10월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습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22일 베트남 호찌민 출장 중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상태가 악화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별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