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령자의 장수 비밀, 유전자와 생활습관의 조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인물 중 한 명인 스페인 여성의 장수 비결이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스페인 백혈병연구소와 바르셀로나대학교 공동 연구팀이 지난해 117세 168일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마리아 브라냐스 모레라의 유전적 특성과 생활방식을 분석한 결과를 의학저널 '셀 리포츠 메디신'에 발표했습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19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브라냐스 모레라는 8세에 부모의 고향인 스페인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스페인 독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특히 113세의 고령에도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가 완전히 회복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었고, 202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세계 최고령자 타이틀을 유지했습니다.
연구팀은 브라냐스 모레라가 사망하기 1년 전에 채취해둔 혈액, 타액, 소변, 대변 등의 생체 샘플을 활용해 종합적인 생물학적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바르셀로나대학교 의과대학 유전학과 학과장인 마넘 에스텔러 박사에게 "나를 연구해달라"고 직접 요청한 브라냐스 모레라의 뜻에 따라 진행된 이번 연구는 유전체, 전사체, 대사체, 단백질체, 미생물군 등 다각도로 분석되었습니다.
특별한 유전적 특성, 짧은 텔로미어가 암 예방에 기여
연구 결과 브라냐스 모레라는 일반적인 노화 징후들을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염색체 끝부분에 위치한 단백질 복합체인 텔로미어의 소모, 비정상적인 B세포 집단, 백혈병이나 염증성 질환 위험을 높이는 클론성 조혈증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브라냐스 모레라의 텔로미어가 유난히 짧았다는 점이 특별했습니다. 텔로미어는 DNA 손상과 재조합을 방지해 염색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암세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상 세포의 텔로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짧아지지만, 암세포는 스스로 효소를 활성화해 짧아진 텔로미어를 계속 길게 늘려가며 분열을 지속합니다. 연구팀은 브라냐스 모레라의 짧은 텔로미어가 세포 분열의 양을 제한해 암 발생을 억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DNA 분석에서는 심장과 뇌 세포를 질병과 치매로부터 보호하는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몸 전체의 염증 수치가 낮아 암과 당뇨병 위험을 줄였으며, 콜레스테롤과 지방 대사도 매우 원활했습니다.
에스텔러 박사는 "염증 수치가 높으면 노화가 빨리 진행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요구르트 섭취와 유익균, 건강한 미생물군의 비밀
브라냐스 모레라의 신체 내 미생물군에서 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움이 풍부하게 발견된 것도 낮은 염증 수치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브라냐스 모레라가 하루에 요구르트를 3개씩 섭취했는데, 요구르트에 함유된 박테리아 덕분에 비피도박테리움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브라냐스 모레라는 장수를 예측할 수 있는 변이를 가진, 유전적으로 복권 당첨자였습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에스텔러 박사는 브라냐스 모레라의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최소 10~15세는 젊었다고 밝혔습니다.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건강한 생활방식도 장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브라냐스 모레라는 지중해식 식단을 유지했으며 과체중이 아니었고, 흡연과 음주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매일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했습니다.
2001년 이후로는 혼자 생활했지만 가족들과 같은 마을에 거주하며 늘 친구들이 곁에 있을 만큼 활발한 사교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5년 전까지는 피아노 연주도 계속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신중한 해석, 다양한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
일부 전문가들은 브라냐스 모레라 사례를 해석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마쿨라타 데 비보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원은 "유전학과 대사 요인이 질병 발생 확률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질병의 인과관계는 절대적이라기보다 확률의 문제입니다"라며 좋은 유전자와 건강한 미생물군만으로 오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유전학과 미생물군만으로는 장수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으며, 교육 수준, 생활 환경, 소득 수준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기대 수명을 크게 좌우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습니다.
에스텔러 박사는 이번 연구가 고령자 건강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브라냐스 모레라의 아들은 52세에 사망했지만, 두 딸은 현재 92세와 94세로 건재합니다.
다른 가족과 친척들은 알츠하이머, 암, 결핵, 신장질환, 심장질환 등 일반적인 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