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고령층 보이스피싱 방지 위해 ATM 앞 휴대전화 통화 금지 조례 시행
일본 오사카부가 고령층을 노린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도입합니다.
오는 8월 1일부터 자동입출금기(ATM) 앞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휴대전화 통화를 전면 금지하는 '특수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한 개정 조례'가 시행됩니다. 이는 일본에서 이러한 유형의 조례가 시행되는 첫 사례로, 급증하는 '오레오레(나야 나)' 사기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지난 2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조례는 ATM 설치·운영 사업자에게 고령자의 휴대전화 통화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사카부는 일본 47개 광역자치단체 중 인구 규모가 도쿄·가나가와현에 이어 세 번째로 많고, 유동인구는 도쿄 다음으로 많은 지역입니다. 특히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조례 시행에 따라 오사카 지역 금융기관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감시 시스템 도입과 직원 중심의 현장 대응 강화 등 다양한 자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JA그룹 오사카 동부조합은 다이토시 본점에 AI 카메라 기반 감지 시스템을 도입해 ATM 앞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이용자를 실시간으로 감지합니다. 통화가 감지되면 경보음과 함께 "전화를 끊으세요"라는 음성 안내가 나오고, 인근 직원에게도 즉시 알림이 전송되어 현장 개입이 이루어집니다.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사회적 인식 변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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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미라이은행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인이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ATM을 조작할 경우 직원이 직접 말을 걸도록 하는 '말 걸기' 내규를 의무화했습니다.
오사카부는 다른 금융사에도 '통화 금지' 포스터를 ATM 부스와 점포 내에 부착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전화 금융사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수법은 자녀나 친척을 사칭해 "급히 돈이 필요하다"며 송금을 요구하거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세금·보험료 환급을 도와주겠다"고 속이는 방식입니다.
'오레오레' 사기로 불리는 이러한 범죄는 2000년대 초부터 일본 전역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디지털 금융 환경을 악용해 수법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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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2023년 오사카부 내 특수 사기 피해액은 약 60억8000만 엔(약 567억 원)으로 전년 대비 66.1%나 급증했습니다. 특히 피해자 대다수가 고령층으로 나타나면서 지역사회와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대응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사카부 관계자는 "지하철에서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상식이 된 것처럼, 앞으로는 ATM을 조작할 땐 통화하지 않는 문화도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번 조례에는 금융회사의 위반에 따른 벌칙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AI 카메라 도입 등 기술적 조치 역시 각 회사의 자율에 맡겨져 있어, 무인 ATM 출장소 등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3월 오사카부 의회는 과거 3년간 ATM으로 송금한 적이 없는 70세 이상 고령자의 이체 한도액을 1일 10만엔 이하로 제한하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개정안에는 고령자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ATM을 조작하는 것을 금지하고, 사업자에게 필요한 조치 내용 등도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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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국은 아직 오사카부와 같은 구체적인 '행위에 기반한 조례'는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재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은행 창구 및 ATM 주변에 '보이스피싱 주의' 안내방송과 문자 알림, 통화 연결 차단 메시지 등을 도입하고 있으며, KB국민은행·신한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은 일정 금액 이상 현금 인출 시 직원이 직접 위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운영 중입니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는 금융감독원, 경찰청 등이 합동으로 '보이스피싱 예방 핫라인'과 상담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고령층 대상 피해가 집중되자 65세 이상 고액 송금 시 전화 인증 절차를 추가 도입하거나 은행 직원이 보호자 연락처를 확인하는 방식도 도입됐습니다.
그러나 일본 오사카와 같이 현행법이나 조례로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은 아직 없으며, 금융사 역시 통일된 행동 매뉴얼 없이 자율적 대응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