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월드컵 준비
"지난 1년 동안 선수들을 많이 만났고, 내 이야기를 전하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다.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격과 성품의 소유자인지부터 파악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며 느낀 게 많다. 이제 그것을 토대로 팀을 잘 만들어 가야한다. 선수 파악은 끝났다. 10여 년 전과는 다르다.".
이는 최근 인터뷰에서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밝힌 소회다. 그가 언급한 10여 년 전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의미한다. 감독으로서 첫 월드컵이자, 홍명보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시간이었다.
당시 한국 축구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K리그 최강 전북현대를 이끌던 '봉동이장' 최강희 감독이 아시아 예선까지만 대표팀을 지휘하고 본선 티켓을 확보한 후 소속팀으로 복귀했으나, 적합한 후임자가 없었다.
이때 소방수 역할을 맡은 이가 바로 홍명보 감독이었다.
경험 부족과 준비 시간 부족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
홍 감독은 2009년 FIFA U-20 월드컵 8강,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 눈부신 성과를 거뒀지만, A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나서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홍명보호는 출항했다.
지난 6일(한국시간) 이라크 바스라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조별리그 9차전 이라크와의 경기. / 뉴스1
결과는 참혹했다.
대표팀은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홍 감독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불명예 퇴진했다.
당시 그는 "월드컵을 1년을 남긴 시점에 대표팀을 맡아본 적이 있다. 당시엔 선수 파악으로만 시간을 다 보냈다"면서 "나름대로 선수들을 다 시험해봤는데, 결과적으로 (본선에서)선택할 자원이 그 선수들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홍명보호의 베스트11은 눈 감고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만 기용한다'는 비판을 넘어 '의리 축구'라는 조롱까지 받았던 시기였다.
런던 올림픽 시절 함께했던 선수들로도 월드컵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던 젊은 지도자 홍명보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한국 축구와 그 자신 모두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U-22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 뉴스1
10년 만의 재도전, 철저한 준비로 임하는 홍명보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중년이 된 홍명보 감독에게 다시 도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감독으로서 두 번째 월드컵,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기회를 맞아 그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취임 직후 유럽으로 날아가 손흥민, 이강인, 이재성, 김민재, 황희찬 등 주축 선수들을 직접 만났다. 또한 양현준, 배준호, 이한범, 오현규, 이영준 등 중소리그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젊은 선수들도 주시했다.
중동과 일본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도 체크했으며, 국내에 있을 때는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유망주들을 발굴했다.
주축 선수와 백업 자원을 광범위하게 파악하면서 아시아 예선 10경기를 치르며 실전 경험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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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팀에서 뛰는 것을 보는 것과 소집해서 함께 훈련을 해보는 것, 그리고 실제 경기에 투입해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그의 말처럼,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 속에 탄탄한 인재풀을 구축했다.
쿠웨이트와의 최종 10차전 후 홍 감독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 6월 어떤 선수가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느냐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10년 전에는 그걸 놓쳤다"면서 "그때 가장 좋은 폼을 보이는 선수를 선발할 것이다. 남은 기간 계속 선수들을 면밀하게 체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1년 뒤 우리 선수들의 상황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지금까지 팀을 지탱해 온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주축인 것은 맞지만, 아직 우리 팀 베스트 멤버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선수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무한 경쟁을 선언한 것이다.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와 가능한 조합을 충분히 파악한 홍명보 감독. 10년 전에는 이 과정만 거치고 바로 본선에 나갔지만, 이번에는 1년의 추가 시간이 주어진다.
최종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출항 전부터 불안했던 그때보다는 더 희망적이고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