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04일(수)

대구 참사와 달랐던 '5호선의 기적'... 기관사+시민의 침착한 대응이 대형 참사 막았다

긴박했던 5호선 화재 순간... 침착한 대응이 인명피해 막았다


지난달 31일 서울 지하철 5호선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60대 남성 방화 피의자 A씨는 미리 준비한 2L 크기의 통에 든 인화성 물질을 바닥에 뿌리고 옷가지에 불을 붙였다. 


'제2의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 그러나 당시 열차에 탑승한 400여 명 중 23명만이 연기 흡입 등 경미한 부상을 입었을 뿐, 대형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여의나루역 구간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승객들이 선로를 통해 대피하고 있다. / 뉴스1(독자 제공)31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여의나루역 구간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승객들이 선로를 통해 대피하고 있다. / 뉴스1(독자 제공)


기관사와 승객의 침착한 대응, 그리고 22년 전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으로 대량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등에 따르면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중 네 번째 객차 승객이 비상통화장치로 "불이 났다"고 신고했다. 


기관사는 대응 매뉴얼에 따라 상황을 관제실에 보고하고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실시했다. 이어 열차를 멈춘 뒤 불이 난 네 번째 칸으로 이동한 기관사는 벽면에 비치된 소화기를 꺼내 직접 화재를 진압했다. 


일부 승객들도 소화기를 꺼내 들고 가세해 불길은 크게 번지지 않고 바닥의 옷가지 등만 태운 채 진화됐다. 


기관사에게 화재 상황을 알린 일부 승객은 객실 의자 하단의 비상 개폐 장치를 작동했다. 이에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약 300m 떨어진 인근 역사 대합실 등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31일 오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 뉴스131일 오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마포역에서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긴급 이송하고 있다. / 뉴스1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


이번 화재는 2003년 대구 지하철 1호선 열차 방화 사건과 사고 원인은 같았으나, 결과가 달랐다. 


지하철의 내부 소재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대응 매뉴얼, 시민 의식 모든 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이 대형 인명피해를 막았다는 평가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전동차 골격과 바닥·내장재 등을 스테인리스 등으로 교체했다. 스테인리스는 800도의 고온에서도 형태를 유지하고 연소하지 않는 대표적인 불연재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땐 내부 의자와 통로, 우레탄폼 소재의 바닥, 폴리우레탄 등 가연성 소재를 사용해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또 유독가스를 발생시켜 피해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사고 열차의 모습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주기적으로 시행해 온 화재 대응 훈련도 실제 상황에서 빛을 발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대구 참사 이후 3~4개월마다 객실 화재 대응 훈련을 해 왔다. 


사고 발생 한 달 전인 4월 29일에도 객실 내 연기 발생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참사 이후 화재 대응 시스템도 구축돼 승객이 비상 전화로 기관사에게 신고하면 그 내용이 관제실에도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 시스템 덕분에 관제실이 후속 열차를 즉시 정차시킬 수 있었다. 


시민들의 대응 의식도 크게 달라졌다. 승객들은 방화 발생 즉시 객실 내 비상 전화로 기관사에게 상황을 알렸고, 좌석 아래에 있는 비상 개폐 장치를 이용해 직접 문을 열고 탈출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체 출입문 64개 중 60%를 승객들이 직접 열었다. 


한편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60대 남성 방화 피의자 A씨에 대해 지난 1일 오후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앞서 A씨는 손에 그을음 등이 많이 묻은 상태에서 들것에 실려 여의나루역 역사로 나오다가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A씨는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어 지하철에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