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보다 못하다'며 작심 비판
한 육상 해설위원이 대학 결승 경기를 보다가 결국 마이크를 내려놨다. 느린 레이스에 실망한 그는 "이 경기는 중계하지 않겠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논란의 장면은 지난 21일 경남 밀양에서 열린 제54회 전국종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벌어졌다. 남자 대학부 3000m 장애물 결승 경기에서 선수들은 기록보다 순위에 집중하는 경기를 펼쳤고, 이 모습은 고스란히 중계 화면에 담겼다.
선수들은 전력을 다해 빠르게 달리기보다, 주변 선수들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달리며 1위 자리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결승 경기 도중 옆 선수와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까지 포착되며 중계진과 시청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YouTube 'STN SPORTS'
경기 도중 중계 중단 선언까지...한국 육상 현실에 쓴소리
이날 1위를 차지한 선수의 기록은 10분 16초 56이었다. 이는 2007년 당시 한국체육대학교 재학 중이던 황준현 선수가 세운 한국 남자 대학부 최고 기록 8분 50초 41보다 무려 1분 넘게 뒤처진 수치다. 심지어 여자 최고 기록인 9분 59초 05에도 미치지 못했다. 같은 대회 남자 고등부 1위는 9분 40초 90을 기록해 대학 선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냈다.
경기를 지켜보던 해설위원은 "선수들의 페이스가 느리다. 너무 순위 경쟁을 하다 보니까 조깅도 아니고, 워킹보다 조금 빠른 것 같다"며 "실망을 많이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이 대학 육상 선수들의 현실이다. 이런 경기를 국민들이나 관중들에게 보여주는 건 우리 육상인들의 창피한 모습"이라고 일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페이스는 좀처럼 빨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해위원은 "이렇게 뛰면 중계하는 저희도 힘이 나지 않고, 시청하는 분들도 분명히 채널을 돌릴 것"이라며 "육상의 인기를 저하시키는 경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당분간은 대학 3000m 장애물 경기는 중계방송해서는 안 된다. 피디님에게 이야기해서 당분간 중계방송 안 하는 걸로 하겠다"고 작심 발언 했다.
YouTube 'STN SPORTS'
해설위원은 "정말 속상하다. 초등학생도 이것보다는 빠르게 달린다”는 말까지 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1등 해도 기록이 되지 않으면 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며 "기록 기준에 들어야만 갈 수 있는데, 이 선수들이 앞으로 무슨 꿈이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끝내 "정말 속상해서 드리는 말씀"이라며 "대학생 1위가 10분을 넘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여자 선수도 9분대를 뛰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담합까지 했다면 더 심각한 문제...초중생들이 뭘 배우겠나"
해당 경기의 해설을 맡은 사람은 대한육상연맹 특별보좌역을 맡고 있는 윤여춘 위원이었다. 그는 과거 대한육상연맹 부회장과 국민생활체육 육상연합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YouTube 'STN SPORTS'
지난 29일 윤 해설위원은 KBS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발언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는 "선수들이 담합해서 기록 위주가 아닌 순위 경쟁을 펼친 것에 대해 안타까워서 한 이야기였다"며 "속이 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선을 다했는데 기록이 안 나오는 건 본인의 수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그런데 담합해서 경기를 한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정말 안타깝고 꼭 고쳐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 육상이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 제외하고는 올림픽 가는 선수가 없다"며 "이런 걸 보면 국민들이 육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나. 육상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안타깝고 질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윤 해설위원은 선수들이 순위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보상 시스템의 문제점도 짚었다. 그는 "전국체전 금메달 따면 1억원 가까이 받는다. 국내 대회에서 1위할 경우 얼마, 2위 하면 얼마의 포상금이 측정되어 있다"며 "그런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못 따면 아무런 혜택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꾸 순위 경쟁을 펼치다 보니 우리나라 육상을 거꾸로 가게 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온다"며 "기록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이것을 체육회나 국가에서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