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6일(월)

'황산 테러'로 세상 떠난 5살 태완이... "○○ 아저씨" 내뱉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영구 미제'

26년 전 오늘,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의 비극


지난 1999년 5월 20일 오전, 대구의 한 골목길에서 5세 김태완 군이 신원미상의 범인에게 황산 테러를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태완 군은 얼굴과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시력을 잃었으며, 49일간의 투병 끝에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최악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인사이트KBS '추적60분'


사건 당일 태완 군은 평범한 아침을 보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있다가 이모 집과 친구 집을 거쳐 다시 미용실에 들렀고, 가방을 챙겨 학원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태완 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억지로 입을 벌려 황산을 들이부었다. 태완 군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까만색 비닐봉지 안에 든 무언가를 뒤쪽에서 얼굴에 뒤집어씌웠다고 한다.


태완 군의 일관된 증언과 수사의 한계


병원에서 5일 만에 의식을 찾은 태완 군은 범인을 묻는 질문에 일관되게 '○○(치킨집) 아저씨'라고 답했다.


당시 태완 군의 부모가 녹음한 영상에 따르면, 태완 군은 골목길에 들어설 때 이 아저씨를 만났고, 전봇대 있는 쪽에서 그가 자신을 불렀다고 진술했다.


인사이트KBS '추적60분'


사건을 목격한 태완 군의 친구도 같은 사람을 지목했으나, 경찰은 이 친구가 청각장애가 있어 말투가 어눌하다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수사 과정에서 태완 군이 지목한 남성의 신발에서 황산이 발견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지만, 경찰은 이 신발이 다른 옷가지와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유의미한 증거로 보지 않았다.


결국 태완 군은 생일을 9일 앞둔 1999년 7월 8일, 49일간의 병원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태완 군의 어머니는 병상일지 격으로 쓴 '49일 간의 아름다운 시간'에서 "나는 작고 예쁜 태완이를 지켜주지도 못하고 나쁜 아저씨가 누군지 찾아주지도 못한 바보 같은 엄마"라고 자책했다.


공소시효 만료와 '태완이법'의 탄생


2013년 11월, 유족과 시민단체가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인사이트KBS '추적60분'


공소시효 만료를 3일 앞둔 2014년 7월 4일, 유족은 태완 군의 진술을 토대로 '○○ 아저씨'를 검찰에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한국범죄심리센터와 서울경찰청 등은 태완 군의 생전 진술을 분석한 결과 '진술이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대구고법 역시 재정 신청을 기각했다.


결국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여론이 높아지면서, 2015년 국회에서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태완이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태완 군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불소급 원칙'에 따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됐다.


인사이트KBS '추적60분'


태완 군의 어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모에게 공소시효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며 "태완이법으로 인해 미제 살인사건 유족들의 가슴 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으며, 한국 사회에 공소시효 제도의 한계와 아동 대상 범죄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태완 군을 위한 정의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을 딴 법률은 다른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의 길을 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