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맞서던 '강골 검사'에서 파면된 대통령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헌정사상 두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한때 '권력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골 검사'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는 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대학생 시절 윤석열 당선인 / Instagram 'sukyeol.yoon'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아홉 번의 고배 끝에 늦깎이 검사로 임용된 후, 평검사 시절부터 살아있는 권력과 정면으로 맞서는 행보를 보여왔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실세였던 박희원 경찰정보국장을 구속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법정에 세우고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 씨까지 기소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파헤치는 등 권력의 중심부를 향해 수사의 칼날을 겨눴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 국정농단 사건 수사 특별검사팀' 수사팀장 당시 / 뉴스1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만든 정치인 윤석열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은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면모를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시켰다.
이 발언으로 정권의 눈 밖에 나 지방 고검으로 좌천됐던 그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윤 전 대통령에게 결정적으로 날개를 달아준 건 역설적이게도 문재인 정부였다.
문 전 대통령은 그를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초고속 승진시키며 '적폐청산'의 선봉에 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며 보수 진영 붕괴의 주역이 됐다.
검찰총장 시절 윤석열 전 대통령과 당시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 뉴스1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의 밀월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정권과의 갈등이 본격화됐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을 겨눈 수사들이 이어지면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정면충돌이 벌어졌다.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그리고 파면까지의 극적인 여정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통해 윤석열 사단을 대거 교체했고, 검찰총장의 직속 수사를 막으면서 윤 전 대통령을 사실상 '식물총장'으로 만들었다.
급기야 헌정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까지 내려지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취임한 검찰총장이 2년도 채 안 돼 정권의 최대 정적이 된 셈이다.
지난 2020년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낸 화환 / 뉴스1
이에 맞서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정권과의 정면 대결을 택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는 보수 진영의 구심점이 됐고, 정치 입문 불과 8개월 만에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썼다.
하지만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강골 검사'에게 국정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정치에 요구되는 유연성과 타협 대신 끝까지 '법과 원칙'을 고수하는 검사적 접근 방식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끝없는 충돌과 분열로 이어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 뉴스1
윤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갈등은 점차 극단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이 22건의 탄핵소추안과 27건의 특검법을 쏟아내자 윤 전 대통령은 25차례 거부권으로 맞섰다.
급기야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라는 극약처방을 꺼내 들었으나,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자충수가 됐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이라고 지난해 12월 3일 대국민 담화에서 호소했지만, 그 결단이 추락의 시작이었다.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윤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수감된 채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계엄은 야당의 폭거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고 항변하였으나, 결국 파면되며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