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 / 뉴스1
국민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9세.
송대관은 '해뜰 날', '차표 한 장', '유행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한국 대중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유족에 따르면 그는 전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평소 지병이 있었으며 수술도 세 차례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 KBS '가요무대' 출연이 잡혀 있을 정도로 활발히 무대를 누벼왔던 송대관의 작고에 많은 팬들이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송대관 / 뉴스1
송대관은 1946년 전라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1965년 전주영생고를 졸업한 후 서울로 상경해 손석진 오아시스 레코드 사장을 도우며 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으나 무명 생활을 이어가다 1975년 '해뜰 날'로 스타덤에 올랐다.
송대관은 경쾌한 멜로디에 긍정적인 가사를 넣은 이 곡으로 방송국 가요대상 3개를 석권하며 가수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1980년 미국으로 이민 갔던 그는 198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인생은 생방송' 등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하며 국민가수 반열에 올랐다.
송대관 / 뉴스1
1980년대 후반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부활을 이끌며 '트로트 4대 천왕'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200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아내 이정심이 작사한 '유행가'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다. 이후에도 '사랑해서 미안해', '내 여자', '오래오래'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2013년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에 휘말렸으나, 2015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집을 비롯해 500억 원대 재산이 모두 은행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송대관은 개인 회생 절차를 밟으며 빚을 갚기 위해 고령에도 수많은 행사를 소화했다.
송대관 / 뉴스1
미국 이민 시절부터 친분이 깊었던 가수 태진아와는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잇몸약 CF에 함께 출연했으며, 매년 '송대관 & 태진아 라이벌 콘서트'를 열 정도로 친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송대관은 2001년 한국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린 문화예술발전 유공자에게 주는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8년에는 남진의 뒤를 이어 제2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