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일간 이재명 대통령 곁을 지킨 강훈식 전 비서실장이 15일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강 전 실장은 "더 보조를 맞춰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499일 동안 저를 움직인 가장 큰 힘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강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님은 탁월한 행정가이고, 대리인임을 잊지 않는 정치인이지만, 무엇보다 좋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모시는 내내 감탄하는 순간이 많았고, 어깨너머로 배우게 해주신 세상이 무궁무진했다"고 덧붙였다.
강 전 실장은 지난달 21일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두 장관 후보자의 인선 실패로 정부 지지율이 하락했고, 청와대 인사위원장이었던 강 전 실장은 이 책임을 통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주 넘게 후임을 임명하지 않으면서 유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14일 임광현 국세청장을 신임 비서실장에 임명하면서 강 전 실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강 전 실장은 사의를 표명하게 된 과정을 회상하며 "가장 괴로웠던 날은 대통령님의 기자회견 날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모시는 분의 입에서 부족했다, 송구하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비수가 날아드는 심정이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강 전 실장이 언급한 기자회견은 지난달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연 대국민 기자회견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자 직접 국민 앞에 나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며 "모두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사과했다.
강 전 실장은 "비서실의 장으로서 대통령께서 사과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했다"며 "전적으로 제 불찰이다. 잠 못 이루는 주말을 보내고 대통령께 사의를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을 더욱 단단히 지켜야 할 때 왜 나가느냐는 말씀은 많이 아팠다"면서도 "그럼에도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와대는 제 개인의 거취와 관계없이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대오를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전 실장은 충남 아산 지역구에서 3선 의원을 지내다가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비서실장직을 맡았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대미 투자 협상과 3대 메가 프로젝트 출범 등 정부 핵심 과제를 총괄했다.
작년 8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별도 면담을 갖고 양국 간 현안을 조율하기도 했다. 올해 3월에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정에 대처하기 위해 직접 아랍에미리트로 출장을 가 600만 배럴의 원유 긴급 도입을 성사시켰다.
강 전 실장은 이날 오전 마지막으로 청와대 회의에 참석했다. 청와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강 전 실장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여권 내에서는 강 전 실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당분간 휴식을 취하겠지만 곧 중요한 선거가 생기면 차출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내 '97그룹(1990년대 학번·70년대생)'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강 전 실장은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릴 경우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