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강유정 기자 = 군대에서 헌혈 도중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가 나왔음에도 질병관리청이 감염 통보를 누락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9일 국민일보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는 2020년 4월 23일 군 복무 당시 단체헌혈을 했던 A씨가 HIV에 감염된 사실을 파악하고, 즉시 질병관리청에 감염 신고를 했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의 원인바이러스다.
질병청은 에이즈예방법 등에 따라 감염 사실을 주소지 보건소와 군 당국에 통보해 A씨가 역학조사를 받도록 조치해야 했다.
하지만 질병청은 감염 통보 누락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질병청은 무려 1218일이 경과한 지난 8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자료 요청이 있고 난 뒤에야 해당 보건소에 A씨의 감염 사실을 알렸다.
A씨는 결국 질병청의 업무상 과실로 인해 HIV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전역 때까지 군 복무를 이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다른 장병에게 HIV가 전파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질병청은 통보 지연을 묻자 "담당자 착오가 있었다"라고만 답했다.
김영주 의원실이 질병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간 질병청이 적십자사로부터 HIV 감염 신고를 접수한 뒤 지자체 보건소에 24시간을 초과해 늑장 통보한 사례는 총 53건으로 밝혀졌다.
이 중 '1년 이상'과 '6개월 이상~1년 미만'은 각각 2건에 달했다.
또한 '1개월 이상~6개월 미만' 5건, '3주 이상~1개월 미만' 2건, '2주 이상~3주 미만' 3건, '1주 이상~2주 미만' 7건, '1일 초과~1주 미만' 32건으로 조사됐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보건당국 HIV 감염자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적십자사는 에이즈예방법에 따라 헌혈로 받은 혈액의 HIV 감염 사실이 확인됐을 경우 24시간 이내에 질병청 시스템에 신고해야 한다.
질병청은 신고가 접수된 후 감염자의 인적 사항을 기초로 주소지 관할 보건소에 양성 사실을 통보한 후 역학조사를 요구하게 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HIV 감염 사실 신고 서식에는 혈액 검사물 번호만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질병청 담당자가 양성 사실 통보를 위해 감염자의 성명·주소·생년월일·연락처와 같은 인적 사항을 파악하려면 적십자사 담당자와 직접 전화 통화를 해야 한다.
또한 감염 신고 시 '24시간'이라는 시간제한을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질병관리청이 감염 사실을 통보할 때는 법령상 시간적 제한도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탓에 감염자가 감염 사실을 통보받고 역학조사가 시행될 때까지 시간이 지연되고, 질병청 담당자의 착오로 감염 통보 자체가 누락되기 쉽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영주 의원은 "HIV 감염자는 에이즈로 발병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속하게 통보해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해야 하고,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타인에게 전파하는 문제도 조기에 막아야 한다"라면서 "HIV 관리 체계 전반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