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연간 실적에서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앞지르며 반도체 업계 1위에 올랐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분기마다 수조원대 적자를 기록하던 회사가 역사를 바꿔버린 배경을 두고, 재계에서는 2023년 여름 내려졌던 한 결정을 다시 주목하고 있습니다.
2023년,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불황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1분기 영업손실은 3조 4023억원, 2분기에도 2조 882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로 IT 수요가 급감했고, 메모리 가격이 연일 하락세를 나타냈습니다. 업계 전반이 투자 축소와 비용 절감에 나서는 국면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는 최태원 회장의 뜻에 따라 전 임직원에게 정액 격려금을 지급했습니다. 실적과 연동되는 기존 생산성 격려금(PI)이 아닌,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한 특별 격려금이었습니다. 당시 회사 안팎에서는 "적자 국면에서 보기 드문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단기 실적 관리보다 조직 안정과 사기 진작을 우선한 판단이었습니다.
이 선택은 이후 회사의 방향을 가르는 분기점이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구조조정과 긴축에 무게를 싣기보다, 핵심 인력과 연구개발(R&D) 체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공정 분야에 대한 투자 기조를 흔들지 않은 점은 이후 반등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업황이 바닥을 통과한 뒤에는 인공지능(AI) 서버용 메모리 수요 확대 흐름을 빠르게 흡수하며 실적 회복 속도를 높였습니다.
2025년 하반기부터 SK하이닉스의 실적 회복세는 경쟁사를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리 가격 반등과 함께 수익성이 개선됐고, HBM 중심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2026년 초 집계된 2025년의 연간 실적에서는 삼성전자를 처음으로 넘어섰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위기 국면에서 내려진 선택이 순위를 갈랐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 회장의 경영 방식은 그래서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단기 실적보다 조직의 지속성과 기술 경쟁력을 중시하는 판단이 장기 성과로 이어졌다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2020년 반도체 불황기에도 성과급을 지급하지 못하는 대신 특별기여금을 편성한 바 있습니다. 위기 때마다 보상 구조를 조정해 조직을 유지하는 방식이 반복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를 '미국發 AI 훈풍 덕분'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2023년 최 회장의 결단은 단순한 현금 지급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며 "그 판단이 이후 투자와 기술 전략을 흔들지 않는 기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리더십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적자기업' 하이닉스 인수 결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최 회장은 2012년 채권단 관리 아래 있던 하이닉스를 인수했습니다. 당시 하이닉스는 구조조정과 적자를 반복하던 기업이었고, 그룹 안팎에서는 인수 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높은 변동성과 막대한 투자 부담이 이유였습니다.
하이닉스 편입이후에도 시장에서는 '무리한 선택'이라는 시선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최 회장은 반도체를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설정하고, 기술 투자와 인력 유지를 흔들림 없이 이어갔습니다. 업황이 꺾일 때마다 구조조정보다 체질 개선에 무게를 둔 판단이 반복됐습니다.
2년 전 적자 국면에서의 보상 결정과, 10여 년 전 적자 기업 인수라는 선택이 같은 선상에 놓이는 이유입니다. 위기 때마다 방향을 바꾸기보다 기존 전략을 지켜온 판단이, 결과적으로 경쟁 구도를 바꿔놓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분기마다 수조원대 적자를 기록하던 시기의 선택이, 업계 1위를 만드는 출발점이 됐다는 해석입니다. 숫자로 확인된 성과 뒤에, 과거의 결단이 다시 거론되는 배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