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그룹이 전날(26일) 미국 권선 계열사 에식스솔루션즈(LS의 증손회사)의 코스피 상장 신청을 철회했습니다. 준비 기간만 1년 8개월에 이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오찬에서 중복상장 문제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며 엄격한 기준 필요성을 언급한 뒤 나흘 만에 내려진 결정입니다.
이번 철회는 IPO 한 건이 무산된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시장이 주목하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LS가 상장을 추진했던 이유가 자금 수요였습니다. 에식스솔루션즈는 변압기와 모터 등에 쓰이는 권선(피복 구리선)을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LS는 설비 확충을 위해 상장을 통해 약 5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논리를 앞세워 왔습니다. 상장만 철회됐을 뿐, 여전히 자금 수요가 있다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할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에식스솔루션즈는 LS가 2008년 인수한 북미 전선 사업을 모태로 2024년 4월 출범했습니다. 2025년 1월에는 약 2억달러(한화 약 2,897억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를 유치했으며, 당시 기업가치는 프리IPO 기준 약 10억달러(약 1조 4,486억원)로 평가됐습니다. 같은 해 11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면서, 2026년 상반기 상장 가능성도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추진 과정에서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LS가 지난해 3월 에식스솔루션즈와 LS파워솔루션(옛 KOC전기)을 동시에 상장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소액주주 반발이 커졌고, 주주행동 플랫폼 등을 통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습니다.
정책 환경도 달라졌습니다. 지난 22일 대통령과 여당은 '3차 상법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자사주 의무 소각(취득 후 1년 내 소각)과 함께 중복상장 문제를 엄격하게 다루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습니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과 중복상장 방지 성격의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도 함께 거론됐습니다. LS의 상장 철회 결정을 정책 기조와 분리해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IPO가 막힌 상황에서 투자 자금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입니다.
LS는 철회 발표와 함께 "프리IPO에 참여한 재무적투자자(FI)와 새로운 투자 방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2월 중 자사주 50만주 추가 소각, 배당금 전년 대비 40% 이상 인상, 2030년까지 PBR 2배 확대, 향후 5년간 국가 전력망과 2차전지 소재 분야에 7조원 안팎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습니다. 상장 철회로 흔들린 주주 신뢰를 다잡겠다는 메시지와, 투자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신호가 함께 나왔습니다.
시장 관계자들은 "LS가 실행 가능한 자금 조달 수단은 크게 네 가지"라고 입을 모읍니다.
첫째는 회사채 발행과 차입입니다. 속도가 빠르고 구조가 단순하지만,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부채 부담이 커지고 금리와 만기 리스크가 뒤따릅니다. 둘째는 유상증자입니다. 자본 확충의 정석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주식 가치 희석 논란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왜 지금 이 방식이어야 하는지, 기존 주주 보호 장치는 무엇인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됩니다.
셋째는 자산 매각이나 유동화입니다. 단기간에 자금을 마련할 수 있지만, 무엇을 매각하느냐에 따라 미래 사업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핵심 자산을 처분할 경우 성장 스토리가 흔들릴 수 있고, 비핵심 자산만으로는 조달 규모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넷째는 합작(JV)이나 전략적 투자자 유치입니다. 특히 미국 현지 증설이 목적이라면 고객사와 공급망을 함께 묶는 방식으로 자금과 수요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분 구조와 의사결정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어떤 방식을 택하더라도 '자금 조달'은 쉽지 않은 과제가 됐습니다. 진통을 심하게 겪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기업 내부의 재무 판단에만 그치기 어려워졌습니다. '중복상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와 연결된 정책 이슈로 떠오른 만큼, 조달 방식마다 주주 설득과 정책 리스크가 함께 따라붙습니다.
에식스솔루션즈 증설 필요성이 여전히 유효하더라도, IPO라는 선택지가 사라지면서 남은 방법에는 모두 부담이 따릅니다. 차입은 재무 부담을 키울 수 있고, 유상증자는 주식 가치 희석 논란을 낳을 수 있습니다. 자산 매각은 성장 전략의 후퇴로 비칠 수 있으며, 합작(JV)은 지배구조 논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LS는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 자산 매각, 합작 가운데 어떤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FI와 새로운 투자 방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상장 대신 사모 방식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어떤 방식을 택하더라도 주주가치 보호 장치가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번 논란이 다른 형태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