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9일(일)

'정몽준 아들'에서 HD현대 회장으로... 정기선에게 주어진 숙제는

HD현대, 정기선 회장 체제 출범…'기술 중심 오너경영'의 대전환


HD현대가 오너 중심의 경영 체제로 공식 전환했습니다. 그룹의 3세 경영인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며, '기술 중심의 HD현대'로의 항로를 직접 설계하게 됐습니다.


17일 HD현대는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고 정기선 수석부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대家 3세인 정 신임 회장은 앞으로 그룹의 전략과 미래 사업 전반을 총괄하게 됩니다. 


정기선 HD현대 신임 회장 / 사진제공=HD현대


그동안 그룹의 경영 안정화를 이끌어온 '셀러리맨 신화' 권오갑 회장은 이제 명예회장으로 추대돼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이번 인사에서는 HD현대중공업 이상균 사장과 HD현대사이트솔루션 조영철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HD현대가 이제 진정한 오너경영 체제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마친 뒤 2009년 현대중공업 재무팀으로 입사했습니다. 이후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중공업 선박영업 대표,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 등을 거치며 그룹의 체질개선 과정을 직접 주도했습니다. 


현재 지주사 HD현대와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으며, 이번 인사를 통해 HD현대사이트솔루션 공동대표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 회장의 승진은 '세대교체'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권오갑 명예회장이 지난 수년간 HD현대의 지배구조 개편과 재무 안정화를 완성했다면, 이제 정 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기술 혁신과 글로벌 확장'이라는 새로운 성장의 축을 구축해야 하는 책무를 떠안게 됐습니다.


사진제공=HD현대


이제부터가 진짜 시험대입니다. 정 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는 단순한 사업 회복이 아니라, 글로벌 경기 변수와 기술 변화 속에서 '지속 가능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일입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과제는 HD현대인프라코어와 HD현대건설기계의 체질 개선입니다.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매출 둔화, 러시아 제재에 따른 수출 차질, 환율 변동 등 외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건설기계 부문은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부담이 이어지며 수익성이 정체된 상태입니다. 정 회장은 고효율 엔진과 전동화 장비, 수소 건설장비 등 차세대 기술 도입을 통해 '친환경 기계기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 부문에서는 초대형 LNG선과 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 수주로 단기 성과를 이어가고 있지만, 글로벌 선박 발주 사이클이 둔화될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현재의 조선 호황은 '일시적 고점'일 가능성도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특히 후판(厚板) 가격 상승과 환율 변동성은 실적의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꼽힙니다. 정 회장이 강조해온 '디지털 조선소', 'AI 기반 설계 시스템'이 실제 원가 절감 효과로 연결될 수 있을지가 조선 부문 향배를 가를 관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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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부문 또한 중요한 축입니다. HD현대오일뱅크와 HD현대에너지솔루션이 각각 석유·신재생 에너지 영역에서 교차점에 서 있습니다. 글로벌 탄소 감축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추진 중인 해상풍력·암모니아 인프라 투자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가 향후 5년의 그룹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특히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되면, HD현대의 생산·공급 체인도 ESG 기준에 맞게 재편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인공지능(AI)과 관련한 변화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실제 정 회장은 'AI 기반 산업 기술 전환'에 대한 의지가 큽니다. 선박·플랜트·엔진 설계 과정에서 AI 시뮬레이션을 적용하고, 조선소 공정 자동화와 예지정비 기술을 확대하는 등 '산업형 AI 기업'으로의 진화를 추진 중입니다. 


다만,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초기비용이 수반되며, 투자 대비 수익 구조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단기 리스크로 꼽힙니다. AI를 중심으로 삼는 기업이 아닌 만큼, 얼마만큼의 리스크 감수가 이뤄질지가 관건으로 꼽힙니다. 


내부적으로는 조직문화와 인재경영도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HD현대는 2022년부터 사명과 브랜드를 통합하며 '현대중공업의 전통적 제조기업 문화'를 '기술·솔루션 중심 문화'로 바꾸는 중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엔지니어 중심 조직문화가 남아 있어, 정 회장이 강조하는 '유연한 기술기업 DNA'가 실제 현장까지 스며들지는 미지수입니다.


ESG 경영 또한 장기 과제입니다. 정 회장은 취임 후부터 '지속 가능한 기술기업'을 기조로 내세워 왔지만, 그룹 차원의 ESG 전략은 아직 각 계열사별로 분절돼 있습니다.


사진제공=HD현대


 HD현대오일뱅크의 탄소 포집·활용(CCUS) 기술, HD현대중공업의 친환경 선박 프로젝트, HD현대인프라코어의 전동화 장비 등이 각각 따로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ESG 데이터 통합 관리와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 구축이 시급합니다.


재계 관계자는 "HD현대는 이제 진정한 '오너 CEO 체제'로 접어들었다"며 "정기선 회장은 조선·에너지·기계·기술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산업 솔루션 기업'으로 HD현대를 재정의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조선 호황, 원자재 가격, 글로벌 ESG 규제, AI 기술 전환 등 외부 변수들이 향후 정 회장 리더십의 성패를 가를 주요 변수"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인사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닌 산업 대전환의 신호입니다. 권오갑 명예회장이 닦아놓은 안정의 토대 위에서, 정기선 회장은 이제 '기술과 혁신'이라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해야 합니다. HD현대호가 맞이할 바다는 거칠지만, 그 항로는 이미 정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