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밑 터널에서 발생한 지하철 방화 사건, 깊은 역사 선택의 의도성 드러나
여의나루역이 수도권 지하철 277개 역 중 7번째로 깊은 곳에 위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주말 60대 남성이 불을 지른 지하철 열차가 통과한 역으로, 피의자가 인명피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탈출이 어려운 구간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제공한 역사심도정보에 따르면, 2일 기준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승강장은 지하 5층, 심도 35.98m에 위치해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277개 지하철 승강장 중 상위 2%에 해당하는 깊이로, 7번째로 깊은 수치다. 승강장 깊이가 깊을수록 화재와 같은 긴급상황 발생 시 대피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한강 터널 내 방화, 의도적 선택 가능성
소방당국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전 8시 45분쯤 60대 남성 원 모 씨는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를 지나는 열차에 불을 질렀다.
원 씨는 미리 준비한 옷가지에 휘발유를 뿌린 후 식당용 '가스 점화기'로 불을 붙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찰에 "이혼 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원 씨가 열차에 불을 지른 시점이 열차가 여의나루역을 출발해 한강 밑 터널을 지나는 도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터널은 길이가 1km가 넘어 화재가 터널 중앙에서 발생할 경우, 역까지 걸어 나오는 데만 15분 이상이 소요된다. 여기에 역에서 지상으로 탈출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대피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지난해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의나루역은 대피 완료까지 8분 19초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화재 발생 시 승객들의 안전한 대피가 얼마나 어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민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대형 참사 면해
이번 화재는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뻔했으나, 시민들의 침착한 대응이 참사를 막았다.
화재 발생 당시 열차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 400여 명은 터널을 통해 대피했으며, 이 중 21명은 호흡 곤란과 연기 흡입 증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 130명은 현장 처치 후 귀가 조치됐다.
진화 작업과 대피는 시민들의 선제적인 대처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하철 안전교육과 시민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사례가 됐다.
방화 혐의자, 구속 갈림길에 서다
지하철에 불을 지른 혐의로 체포된 원 씨는 현재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
서울남부지법 이영광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현존전차방화치상 혐의를 받는 원 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결과는 이르면 이날 중으로 나올 전망이다.
원 씨는 이날 오전 10시 6분쯤 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흰색 모자와 남색 티셔츠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남부지법에 출석했다.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16분 만에 법원을 나온 그는 "혐의 인정하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으며,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피해자인 척 (사건 현장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피의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했으며, "이혼소송에 불만이 있어 공론화하기 위한 것이었느냐"는 질문에는 "네. 맞아요"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