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생충인 톡소포자충이 인간의 정자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FEBS 저널에 최근 게재된 '톡소포자충 급성 감염이 인간 정자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논문에 따르면, 이 기생충은 정자의 구조와 기능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우루과이, 칠레 등 여러 국가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연구는 톡소포자충 감염이 정자의 '참수' 현상을 유발해 남성 불임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시험관 실험에서 톡소포자충에 노출된 인간 정자의 22.4%가 불과 5분 만에 머리 부분이 잘리는 현상을 관찰했으며, 기생충과의 접촉 시간이 길어질수록 손상된 정자의 수가 증가했다.
톡소포자충(톡소플라스마라고도 불림)은 고양이를 종숙주로 하는 기생충으로, 전 세계 인구의 25~50%가 만성 보균자일 수 있다는 추정치가 있을 정도로 흔하게 발견된다.
주로 고양이 배설물을 통해 환경으로 퍼지지만, 인체 감염은 오염된 채소, 과일, 흙, 또는 충분히 익히지 않은 감염된 돼지고기 섭취를 통해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덜 익힌 돼지고기가 가장 흔한 감염 경로로 알려져 있어, 돈사 주변에는 길고양이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가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성인이 감염되면 무증상이거나 감기와 유사한 경미한 증상만 나타나지만, 암 환자, 신생아, 노약자, 면역결핍 환자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한국에서는 톡소포자충의 검출 사례와 감염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길고양이보다 사료를 먹는 집고양이의 감염률이 낮다.
톡소포자충은 인체 내에서 거의 모든 장기와 골격근으로 침투할 수 있다.
1980년대 일부 에이즈 환자의 고환에서 감염이 발견되면서 남성 생식기관도 감염 대상이 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에서는 감염된 쥐를 대상으로 한 관찰을 통해 톡소포자충이 감염 후 며칠 이내에 뇌와 눈뿐만 아니라 고환으로도 빠르게 침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2017년 연구에서 이미 톡소포자충이 생쥐의 전립선에 낭종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인간을 포함한 여러 동물의 정액에서 톡소포자충이 검출되어 성적 접촉을 통한 전파 가능성도 제기했다.
톡소포자충과 남성 불임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는 이전에도 진행된 바 있다.
2021년 체코 프라하에서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남성 163명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에서는 관찰 대상의 86%에서 정액 이상 소견이 나타났다.
2002년과 2005년 중국에서 실시된 연구들에서도 불임 부부와 남성이 가임 부부와 남성보다 톡소포자충 감염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감염된 생쥐에서 톡소포자충이 감염 이틀 만에 고환과 부고환에 도달할 수 있음을 관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시험관에서 톡소포자충과 인간 정자의 직접 접촉 실험을 진행한 결과, 기생충에 노출된 지 5분 만에 정자 세포의 22.4%가 머리 부분이 잘리는 '참수'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머리 부분이 남아있는 정자 세포도 구조가 뒤틀리고 변형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일부 정자 세포의 머리에는 톡소포자충이 침투하려 한 흔적인 구멍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톡소포자충이 직접적인 접촉 외에도 만성 염증을 유발해 정자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남성 생식 능력이 크게 감소한 현상에 톡소포자충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톡소포자충이 남성 생식기관에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은 거의 확실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사람에게 심각한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언급했다.
관찰된 정자 '참수' 현상은 시험관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인체 내에서도 동일한 영향이 나타날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고소득 국가에서 톡소포자충 발병률이 지난 수십 년간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남성 불임이 증가한 것을 볼 때, 톡소포자충의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톡소포자충 감염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특히 임신 중 감염될 경우 유산이나 선천적 기형을 유발할 수 있고,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