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주위에 물집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1형 바이러스(HSV-1)'가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20일(현지 시간) 미국 과학 매체 뉴아틀라스(New Atlas)에 따르면 최근 미국 글로벌 바이오제약 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 연구진은 미국인들의 의료 기록을 분석해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이 HSV-1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의학저널 오픈(BMJ Open)'에 최근 공개됐다.
이번 연구는 HSV-1 및 유사 바이러스의 예방과 치료가 알츠하이머병과 치매 예방에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발견이다.
최근 몇 년간 HSV-1을 포함한 특정 바이러스 감염이 치매의 원인일 수 있다는 증거가 축적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뇌에서 더 많은 양의 타우 단백질 발현이 유발되는데, 이는 초기에는 뇌를 보호하지만 결국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단백질 엉킴으로 뇌 손상을 초래한다.
HSV-1은 주로 입술 주위에 물집을 일으키지만, 대부분의 감염자는 증상이 미미하거나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성기 주위에 포진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2형(HSV-2)'을 유발할 수도 있다.
연구진은 실제 의료 기록 자료를 활용해 HSV-1과 알츠하이머병의 연관관계를 직접 확인했다.
루크 리우 길리어드 사이언스 수석 연구원은 "미국 내 의료 보험 청구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알츠하이머병과 HSV-1의 연관성을 조사한 최초의 연구"라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약 40만 명의 미국인과 나이, 성별, 기타 요인이 일치하는 알츠하이머병이 없는 대조군의 건강 기록을 비교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 환자 중 과거 HSV-1 진단을 받은 사람은 0.5% 미만으로 소수였지만, 대조군보다 발병률이 약 80% 더 높았다. 이는 두 질환 사이의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다른 형태의 치매를 가진 더 광범위한 집단을 조사해 유사한 패턴을 발견했으며, 알츠하이머병이 HSV-2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와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HSV-1에 대한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않은 HSV-1 감염자들보다 알츠하이머병 발병 가능성이 낮았다는 것이다.
루크 리우 박사는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알츠하이머병과 기타 치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항헤르페스 약물은 알츠하이머병과 관련 치매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특정 감염 치료나 예방으로 치매 위험을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하면 알츠하이머병 등 치매 발병이 약 20% 가량 낮아진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