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5일(일)

생계급여 아껴서 1억5000억 기부... 휠체어 타고 봉사 이어가고 있는 '올해의 장애인' 이병길씨


이병길 씨는 선천성 중증 혈우병과 소아마비로 인한 중복 장애를 안고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그는 서른 살 무렵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이씨의 병은 1만 명 중 한 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으로, 언제 어디서 출혈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다. 약이 없던 시절에는 출혈이 생기면 대량 수혈을 받아야 했다.


제45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 상을 받은 이병길씨. / 사진 제공 = 한국장애인개발원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난 이씨는 혈우병 진단을 30세가 되어서야 받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업혀 험한 산길을 오가며 학교에 다녔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젊은 시절 대부분을 방 안에 누워 라디오를 들으며 보냈다.


마흔 살 무렵, 또다시 혈우병으로 입원하게 된 그는 치료비 부담으로 병원을 가지 못할 처지였다. 그때 지자체의 도움으로 의료보호 1종 수급자로 등록되면서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국내에 혈우병 약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내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주변 독거 어르신들에게 쌀을 사다드리며 시작했다. 이후 생계급여를 아껴 기부하고, 어르신들을 병원에 모셔다드리기 위해 운전면허를 따서 봉사활동도 하게 됐다.


이씨는 기부를 위해 각종 대회 상금까지 내놓았다. 바둑과 작문 실력을 갈고닦아 장기·바둑대회와 수필 공모전 등에 참여해 받은 상금을 기부했다.


장애·노령연금을 받게 된 이후로는 그조차 기부하고 있다. 이렇게 이씨가 26년 동안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원 홍천군 장학회, 장애인협회 등에 기부한 금액은 1억5천만원에 이른다. 수급자로서 본인이 살기도 빠듯한데 왜 그렇게 절약해 기부하는지 물었다. "감사와 행복"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진 제공 = 본인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씨는 독거노인과 중증장애인 등을 위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상생활 지원과 병원 동행보다 더 큰 봉사는 '따뜻한 이웃이 되는 것'이다.


어느 날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팔봉산 경치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홍천에 있는 산인데도 거동과 운전이 힘들어 엄두를 못 냈던 것이다. 이씨가 모시고 갔더니 "방 안에만 있다가 경치를 보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펑펑 울며 고맙다고 하셨다.


병과 장애로 평생을 힘들게 지내왔고 한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씨는 긍정과 감사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중증 장애인 중에는 바깥에 나오기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분들에게 강제로 나오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장애인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18일 제45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 상을 받은 그는 "삶의 언덕을 함께 넘은 사람들과 상을 나누고 싶다"며 홍천의 이웃들과 활동지원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상금 500만원 또한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